한국배구 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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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신궁(明治神宮)경기대회>
1924년에 창설된 일본의 전국종합경기대회로 서울의 조선신궁경기대회와 성격이
같으며, 주로 격년제로 열렸다. 일본과 조선은 한 울타리라는 소위 내선일체(內鮮一
體)의 정치 슬로건을 내건 일본이 조선 스포츠를 끌어들인 꼴이다. 1933년 제7회 대
회부터 배구를 비롯해 여러 종목에 일본인 위주의 팀과 선수가 참가하게 되었다.
배구는 남자부에 경성사범, 철도국(1937년 안종호, 박계조 선수도 출전), 전경성,
여자부에 제1고녀, 제2고녀가 주로 조선을 대표해 여러 번 출전했다.
<전조선종합경기대회>
조선체육회는 1929년 창립 10주년을 맞아 종래 개별적으로 열어오던 전조선야구대
회(제10회), 전조선정구대회(제9회), 전조선육상경기대회(제4회)를 한데 묶어 이 해 6
월 13일부터 3일간 경성운동장에서 제10회 전조선종합경기대회라는 종합체육제전을
개최했다. 바로 이 대회가 오늘날 대한체육회가 해마다 개최해오고 있는 전국체육대
회의 전신(前身)이다. 대회 횟수도 체육회의 창립 연륜을 따르게 되었다.
5년 후 제15회 대회(1934.11.2.~11.3.)에서는 전조선축구(제15회)와 농구종목을 추
가해 모두 5개 종목을 경성운동장을 비롯해 철도국, 욱천(旭川), 배재고보 운동장에
서 한 기간 내에 열어 명실공히 학교 스포츠의 전국체전 모습을 갖추었다.
제16회 대회(1935년) 때는 유도, 씨름, 역기, 검도 등 개인 종목이 추가되어 9개 종
목이 되었고 제17회 대회(1936년) 때는 수상경기, 탁구, 복싱 3개 종목이 다시 포함
되어 총 12개 종목의 매머드 전국체육대회를 이루었다. 이로써 조선체육회는 1920년
창립 이래 경기 종목별로 따로따로 개최해 오던 종목별 대회를 모두 없애고 종합경기
대회로 몰아주는 작업을 끝냈다.
배구는 일제의 강압으로 문을 닫은 조선체육회의 마지막 행사인 제18회 대회
(1937.9.4.~10월 말) 때 제외된 야구 대신 비로소 단 한 번 포함되었다. 이 대회에
서 시행된 단 하나의 남중부 배구경기에서 제2고보가 제1고보를 2-1로 이겨 우승했
다.(1937.9.24. 경성운동장)
한국인의 조선종합경기대회에 배구종목이 포함되지 못한 것은 한국인의 배구 경기
단체가 없었기 때문에 조선체육회도 배구경기를 개별 개최하지 못했고, 특히 남녀 중
등학교배구팀의 주류가 일본인 학교인 탓에 더욱 어려웠던 사정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