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배구100년 - page 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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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배구 100년의 발자취_
성장기
통을 이은 러시아를 비롯, 동구 강호들과 신흥 남북 아메리카, 중국 등 큰 나라들과
당당히 겨뤄 온 것이 배구였다.
이같은성과에는일찍이옥외코트맨흙바닥을뒹굴며백구에핏자국을남기도록땀
흘렸던개척자들의노고가녹아들어있기에그도전의역사가더욱자랑스러운것이다.
우리 배구는 1945년 광복 이전의 어두운 시기, 그리고 5년 후 6·25전란이 가져온
고난의 시기에 이어 1960년대 들어 성장의 시기, 1970년대부터 세계의 스포트라이트
를 받는 영광의 시기에 접어든다.
조선배구협회의 출범
일본의 그늘 아래서 자라온 젊은 학도들은 조국 광복을 맞아 환호를 터뜨렸다. 여
러 가지 설움을 받아온 이들의 기쁨을 더 말해 무엇하랴. 배구에서는 당시 현역으로
뛰고 있던 보성전문 선수들 - 김명수, 안종호, 오광섭, 장동은 등 - 이 선봉에 서서
배구협회 발족을 서두르며 뛰어다녔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전이라 체육 단체들의
명칭 머리에는 모두 ‘조선’이라는 호칭이 붙었다.
광복 이듬해인 1946년 3월 25일 배구 도입 30주년을 맞아 경기중학 강당에서 조선
배구협회가 발족되었다. 일제의 이름은 물론 그 흔적까지 지워버리자는 젊은 학도들
의 각오가 대단했다.
이렇게 해서 교육자 조동식(趙東植, 동덕고녀 교장)을 회장으로 추대하고 현역선수인
김종억, 오광섭, 김명수등이주축이된배구협회가탄생한것이다. 원희득부회장을비롯
하여 김익배, 안종호, 장동은, 임상규, 신현수 등이 초대 이사로 참여했고, 한 발 늦게
박계조, 이상룡, 한종석, 그리고감사로주석범, 김하용이합세한제1기집행부가결성되었
다.이들의면면을살펴보면배구에서도명문인경기중학선수들이다수를차지하고있다.
광복된 조국에 1인 3역의 헌신
초기에는 이들이 임원 겸 선수로 때로는 심판으로 1인 3, 4역을 맡아 뛰어다녔다.
그 선봉은 훗날 배구협회장을 지낸 오광섭이다. 그는 협회 구성 4년도 채 되지 않아
2.
배구협회
태동에서
정착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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