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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배구 100년의 발자취_
성장기
성적은 7전 2승5패로 대회 수준을 고려할 때 흡족할 수 없는 결과였으나 이듬해 제1
회 아시아선수권대회에 대비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이때의 선수단은 다음과 같다.
단장 장기영(張基永), 감독 오광섭, 코치 박계조, 주무 장동은. 선수 장경환, 유붕
수, 손영완, 오만흥, 곽동팔, 유정웅, 김생수, 박진관, 한태원, 조영근, 김효식, 고영
은, 김태성, 정경모, 황창성.
최초의 홍콩 원정은 이처럼 대표팀의 가능성을 테스트하는 계기가 되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이듬해 도쿄에서 열리는 제1회 아시아선수권대회였다. 당시 해외 원정엔
적지 않은 달러를 써야 하기 때문에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야 할 뿐더러 일본과의 승
부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었다.
배구협회는 당시 체신부 장관이던 장기영 회장이 10여 일이 넘는 설득 끝에 선수
권대회라는 명분을 내세워 허가를 받아냈다. 9인제에만 참가했지만 전란을 거치면서
제대로 훈련도 못해 승산이 전혀 없는 상황이었다. 우리로서는 해외 진출의 기회라는
점도 있지만 처음으로 6인제경기를 관전하고 연구할 수 있다는 효과가 분명했다.
우물 안 개구리나 다름없는 우리 배구로서는 일본과의 승부보다 미처 보지 못했던
전술과 기술연구에 골몰해야했다. 2연전 경기에서 한 번은 21-3이라는 스코어로 참
패할 만큼 일본과의 수준차가 너무 컸다.
1969년 제3회 아시아청소년선수권대
회 우승 기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