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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 병 해
광복 후 배구경기는 주로 서울운동장 서편 코
트를 이용했었는데 그곳에서의 경기 모습은 어떠했을지 궁금합니다.
김 만 용
을지로 6가 지금의 국립의료원 자리에 있던 제
2운동장 외에 훈련원 자리를 많이 활용했는데 모래바닥 코트를 뒹굴다보면 겨울엔
흰 공이 붉게 물들곤 했습니다. 선배들 명령에 절대복종할 때여서 시키는 대로 유도
의 낙법까지 배워가며 처음 접한 롤링 리시브를 익히느라 고생 좀 했습니다. 또 처음
엔 손으로 횟가루를 집어 흙바닥에 라인을 그리다가 나중엔 긴 나무로 홈통을 만들고
거기에 톱니처럼 잔 턱을 만들어 횟가루가 든 깡통을 훑어서 라인을 그었지요. 흙먼
지가 일어날 때마다 물을 뿌리며 뛰던 기억이 되살아나곤 합니다.
유 붕 수
당시 배구를 할 수 있는 실내 공간이라곤 이화
여전과 천도교회관에나 있는 정도여서 주로 옥외 코트에서 경기를 벌이곤 했습니다.
체육관이라야 난방은 엄두도 못내고 그저 바람막이 정도였지요. 그래서 주로 옥외경
기를 하게 되는데 혹시 비라도 많이 오게 되면 경기를 일단 중단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렇게 기다려서 4시간 이내에 재개하면 앞에 진행되던 스코어가 인정이 되고, 그 시
간이 지나면 맑은 날 0-0에서 다시 경기를 시작하게 되어 있었지요.
연 병 해
동란 때는 모든 스포츠가 올 스톱 상태여서 배
구경기도 할 수 없었죠. 6·25 전쟁이 터지면서 한강다리가 끊어지고 군 본부도 모두
대구로 이동했었고. 군 팀에 있는 선수들은 그래도 고생을 덜하지 않았나요?
김 만 용
당시 육군본부가 대구에 내려가 있을 때였습
니다. 한번은 CIC(방첩대)가 헌병사에 지는 것을 보더니 김창룡 부대장이 “모든 건
내가 책임질 테니 국내 최강 팀을 만들라”며 특명을 내리는 바람에 한동안 배구팀에
비상이 걸렸죠. 배구는 그때도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였습니다.
원로 특별좌담_
한국배구 100년의 회상과 조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