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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배구 100년의 발자취_
성장기
개막 첫날인 12월 22일 스탠드엔 약 5천여 관중이 몰려 초만원 상태. 조직위위원회
는 물론 인도인들은 어느 편에 서지 않는 중립성을 보여주었으므로 어느 쪽도 핸디캡
이 없는 공정한 조건이었다. 심판 배정에서만은 한국과 왕래가 많았던 일본 심판이
맡게 되어 우리 팀에겐 심리적으로 그만큼 편안한 편이었다.
국내평가로 보나, 현지 언론의 예상으로 보나 한국남자 팀은 북한에 비해 뚜렷한
열세였다. 북한은 6인제 도입이 빠르기도 했지만 국제경기 경험도 우리보다 앞섰다.
그러나 이들은 너무 경직되어 쉽게 흔들리고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는 약점이 있었
다. 따라서 우리로서는 초반에 그들을 흔들어 놓는 전략이 필요했다.
전략으로 극복한 전력 열세
벤치의 이러한 전략이 주효했다. 첫 세트를 7-15로 내준 상태였지만 벤치에서는
“마음 놓고 공격하라. 자신 있게 블로킹하라”고 주문했다. 마침 일본 심판 오쿠라가
북측의 오버네트를 까다롭게 잡지 않는 것을 보고는 “손이 넘어가도 좋다. 1선에서
봉쇄하라”고 지시했다.
북측이 다소 동요하는 사이 한 세트를 만회하며 끈기 있게 반격을 펼쳤다. 북
한에서 이미 6인제를 익혔던 주장 김인수는 침착하게 게임을 풀어갔다. 2-2로
세트 타이가 되자 북측이 트집을 잡으며 옆의 코트로 옮기자고 주장하다 심판의
저지로 물러서고 말았다. 사기가 오
른 우리 선수들은 이 틈을 노려 장
신 손영완(孫永完)이 블로킹 타이밍
을 빼앗는 변칙공격으로 북측의 허
점을 찔렀다. 한번 흐트러진 북측
수비는 타이타닉호처럼 무너지기
시작했다. 마지막 5세트는 15-3,
우리 팀의 일방독주, 결국 3-2의
대역전 드라마로 게임을 마쳤다. 스
탠드의 교민 응원단과 한복차림으
로 응원을 보내던 우리 여자선수들
은 목이 쉰 채로 감동의 울음을 터
1964년 도쿄 올림픽 출정에 앞서 대
표선수단 결단식에서 김인수가 선서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