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배구 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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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난지 부산에서도 협회 간판을 붙였고, 큰 가방 안에 배구 기록 등 서류를 가득 넣은
채로 낮에는 직장 일을 보다가 오후엔 배구 코트로 뛰어 나가곤 했다.
부산 피난시절에는 이년재(李年宰) 회장 밑에 오광섭 이사장(오늘날의 전무이사)이
실무를관장하는가운데구연묵, 지헌택이사가합류, 행정기틀을잡아가기시작했다.
광복 이후 첫 배구경기는 1946년 6월 6일부터 서울운동장에서 열린 전국종별선수
권대회다. 지금도 협회가 주최하는 가장 유서 깊고 권위 있는 대회로 인정받고 있다.
이 대회를 전후하여 3·1절 경축 춘계리그와 8·15경축 추계리그가 열렸다. 피난시
절의 어려운 사정을 생각하면 그 희생정신이 어떠했을지 짐작되고도 남는다.
첫 번째 4월의 춘계리그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 일본 대표선수로 활약하다 막 귀국
한 박계조였다. 그의 일본 생활과 관련 이런저런 구설이 따르기도 했지만 배구에 대
한 충성도라 할까 그 열정으로 따진다면 그를 앞설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를 누구보
다 환영해준 것은 두말할 것 없이 경기중학 동창들이다. 이 대회에서 그는 철도국에
합류하여 선수 겸 기술지도 코치로 나서 우승을 안겨주었다.
춘계리그 첫 우승의 영예는 철도국과 경남여고에 돌아갔다. 서울에 명문 팀들이 있
일본 후지필름 초청대회 광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