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배구 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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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장 기
식민 통치와 전란을 극복한 배구
한국 배구의 올림픽 오디세이는 한 편의 드라마와 같았다. 올림픽 단골손님으로 자
리 잡으며 밑바닥에서 한 계단, 한 계단씩 올라가 단체 구기종목으로는 처음으로 동
메달을 목에 걸기까지 그 과정이 그야말로 극적이었기 때문이다. 인기 스포츠로 일
찍이 자리 잡은 축구나 농구에 비해 출발이 늦었을 뿐더러 열악한 환경에 있었음에도
이를 극복한 배구인들의 결집된 노력이 빛을 본 결과였다.
배구의 올림픽 첫 무대인 1964년 도쿄 올림픽에서 우리 남녀 대표팀은 모두 전패를
당했다. 그러나 4년 후 멕시코시티에서의 양상은 크게 바뀌어 여자팀이 메달 문턱까
지 갔다가 아깝게 5위, 그리고 다시 4년 후 뮌헨에서는 4위, 마침내 4년 후 몬트리올
에서 3위를 차지함으로써 대망의 메달 고지에 오른 것이다.
우리 배구의 올림픽 행진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반세기가 지난 2012년 런던 올림픽
에서 다시 4강 고지를 밟아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따라서 한국 스포츠 올림픽 도전
사에서 효자종목으로 배구를 떼어놓을 수 없게 된 것이다.
8·15광복과 6·25전란의 소용돌이 속에 일어선 우리 배구의 끝없는 도전과 도약
은 한국 스포츠 역사의 성공 모델이 되기에 충분하다. 올림픽 정식종목에 들어간 후
반세기 동안 배구 돌풍이 이어지는 가운데 우리 배구의 도전과 성과는 괄목할 만했
다. 일본으로부터 전수받은 기술로 일찍이 일본을 뛰어넘은 것은 물론 구 소련의 전
광복 이후
~ 1970
1.
배구의 근대화와
국제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