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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배구 100년의 발자취_
여명
1936년 8월 베를린 올림픽대회 마라톤에서 손기정(孫基禎) 선수가 우승하자 삼천
리 방방곡곡 한국인의 가슴이 들끓어 환희 일색이었다. 동아일보는 그의 가슴에 붙어
있던 일장기(日章旗) 마크를 지워 버린 사진을 지면에 게재했다. 소위 ‘일장기 말소사
건’이다. 총독부는 그날 석간(夕刊) 제작을 중지시키고 동아일보를 정간(停刊)시켜 버
렸다. 일본 관헌(官憲)은 흥분된 민심이 가라앉기를 기다려 손 선수의 귀국조차 지체
시키고 그의 행동을 감시했다.
일본 제국주의는 1937년 7월 7일 무력으로 중국을 침략하여 중일전쟁을 벌였고 그
이듬해 5월 한국인의 조선체육회를 강제해산하고 명칭조차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신사(神社) 참배를 거부한 기독교계 학원인 평양 숭실고보, 숭실전문, 숭의고녀도 문
닫게 했다. 이들 학교는 스포츠팀 육성 장학열이 강했었다.
사회 전 분야에 걸쳐 통제가 강화되고 시국이 긴장되어 갔지만, 손기정 선수의 마
라톤 세계 제패가 입증하듯이 한국인 스포츠는 웅비의 날개를 펴려는 듯 활발했다.
1941년 12월 8일 새벽 일본 해·공군 특공대는 하와이의 미국 해군기지를 기습 공
격하고 선전포고도 없는 소위 태평양전쟁을 일으켜 전쟁의 불꽃은 전 세계로 급속히
번져나갔다.
조선총독부는 조선학생경기연맹 14개 단체를 한꺼번에 모조리 해산한 데 이어 그
들이 직·간접 관장해오던 조선체육협회마저 1942년 2월 14일자로 해체해 버렸다.
대학·전문학교 구기(球技) 종목은 완전히 금지되고 중등학교 경기도 제한을 두었다.
각종 경기대회가 거의 모두 중지상태에 빠졌다.
1930년대 전성기의 보성전문 배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