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배구100년 - page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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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배구 100년의 발자취_
여명
반하트와 스기하라
이무렵서울시내공립중등학교에배구보급에열중한일본인이있었다. 제1고보(현
경기고)의 스기하라 미하루(
?原美治
) 체육교사는 교내에 배구부를 만들고 배구 경기
를 경기규칙대로 배우도록 지도하는 한편 다른 학교팀과 자주 교류 게임을 갖도록 했
다. 그는 단순한 평교사가 아닌 교장과 동급인 고등관 신분인 데다가 일본배구협회 이
사를 겸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 배구를 소개한 종로YMCA 바이런 반하트와 대비되는
인물이다. YMCA가청년회원들에게장려한배구는레크리에이션차원이고, 선교활동
의일환인반면스기하라교사는정식배구를지도하고학교배구보급에주력했다.
스기하라는 1933년 일본배구협회가 조선에 지부(支部)를 두게 되자 사무실을 서
울 종로 중학동 17번지 그의 개인자택에 설치하고 지부 간판도 대문에 걸었다. 그 후
1936년 조선총독부 지시에 따라 조선지부가 아닌 ‘조선배구협회’로 명칭이 바뀌면서
간판 역시 새 이름으로 바꿔 달았다.
배구협회 운영은 여전히 일본인 손에 맡겨져 있고 기타미(北見) 총독부 철도국 심
사과장이 회장을, 고다마(兒玉)가 경기이사를 맡는 등 이사 전원이 일본인이었다. 스
기하라 제1고보 교사는 직책이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사무국장 구실을 맡았던 것으
로 추정된다. 어쨌든 그는 총독부 학무국장으로 하여금 학교 배구 육성 시책을 펴도
록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1930년 제1고보에 입학한 안종호와 박계
조를 발굴해 조영규 호랑이 주장과 이대규, 이일영, 유동세 선배가 있는 배구부에 입
문시켜 우리나라 배구 역사에 큰 맥을 이루는 대선수로 자라도록 지도했다. 이상용,
오광섭, 장동은은 그후 후배로 배구부에 입문했다.
중앙YMCA는 1928년 전조선배구선수권대회를 회관 뒷마당에서 열었다. 한국인 손
으로 연 첫 공식 배구 경기로 기록되고 있다. YMCA는 그 이전에 전조선역기(역도)선
수권대회를 비롯해 복싱, 철봉, 농구대회를 개최해 왔다.
첫 배구대회에는 중앙YMCA와 경성YMCA, 그리고 경성사범A, B팀과 선린상업 A,
B팀 등 모두 6개팀이 참가해 경성사범 A팀이 우승했다.
1929년 제2회 때는 중앙YMCA, 경성사범, 선린상업, 제1고보 등 4개팀이 참
3.
종합체육대회에
배구 등장
1...,83,84,85,86,87,88,89,90,91,92 94,95,96,97,98,99,100,101,102,103,...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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