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배구 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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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을 오래 계속했다. 4월 14일자에는 현동완(玄東完) 감독과 바이런 P 반하트 코
치가 인솔한 YMCA 농구단(金永逑, 孫孝俊 등 선수 7명)의 일본 원정 기사를 실었
다. 농구단이 도쿄, 요코하마, 고베 등지에서 현지 YMCA 일본인, 중국인 팀과 경
기를 가져 4전 2승2패의 전적을 거두었다는 최초의 체육관련 기사다. 동아일보는
이밖에도 5월 16일 일본인의 조선체육협회가 주최한 춘계 육상경기대회에 관한 기
사도 크게 취급했다.
조선일보는 1924년 세로쓰기 기사지면에 체육관련 기사만은 가로쓰기로 다루어 돋
보이게 게재하였다. 그 이후 오랫동안 우리나라 신문들은 이 배열방식을 따랐다.
비로소 이 땅에서도 신문과 체육의 불가분의 공존 관계가 형성되고 신문이 운동경
기의 보급과 발전에 앞장서면서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신문이 지방 소도시에서 열린 규모가 작은 경기대회와 그 내용까지 보도하게 되자,
이에 흥미를 느낀 지방 유지들은 일정 규칙과 체계가 제대로 서지 않은 체육행사도
앞 다투어 열어 일반인들의 스포츠 열기를 고조시켰다.
1920년 7월 13일 조선체육회가 결성되었다. 일본인들의 조선체육협회와 별도로 한
국인 지도자들이 민족의 강건을 위해 조직한 체육 종합단체이며, 야구선수권에 이어
축구, 육상, 정구 대회를 독자적으로 개최하기 시작했다. 배구 경기는 참가팀이 모자
라 대회를 열지 못했다.
1923년에는 동아일보, 연희전문(현 연세대), 보성전문(현 고려대)이 독자적으로 전조
제일고보 배구팀. 뒷줄 왼쪽부터 일곱
번째가 박계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