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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배구 100년의 발자취_
여명
20세기에 접어들면서 근대 스포츠의 여러 종목이 서양 문물에 얹혀서 이 땅에 도
입되기 시작했다. 축구는 1897년 인천에 기항한 영국 함정 수병들이 상륙해 시범경기
를 가진 것이 효시가 되고 있으며, 1904년 야구에 이어 연식정구, 육상, 수상(수영),
농구 등이 차례로 우리나라에 보급되었다. 1905년 관립 한성고등보통학교(후에 제1
고등보통학교로 개칭, 현 경기고)에 일본인교사 다카하시(高橋)에 의해 야구부가 생
긴 것은 당시 남녀 중등학교에 각종 운동부가 창설되는 도화선이 되었다.
이들 경기 종목에 비해 배구는 1916년에 도입되었으니 좀 뒤늦은 출발인 셈이다.
따라서 선수 양성과 경기 보급면에서도 뒤처졌다.
동아일보·조선일보 창간과 체육진흥 선도
1919년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 지배에 항거하여 일어난 3·1 독립만세운동은 그
동안 잠자던 민족의 자존심을 깨우는 데 큰 자극제가 되었다. 그 해 3월 5일 조선일
보, 4월 1일 동아일보가 민족을 대변하는 신문으로 창간됐다.
동아일보는 창간 열흘이 된 10일자부터 연 3일간 변봉현(
?鳳現
) 논설위원의 ‘체
육기관의 필요를 논함’이라는 칼럼을 4면에 실어 체육경기의 보급과 장려 활동을
체계화할 것을 주장했다. 변봉현 위원은 1909년부터 3년간 한국인 도쿄 유학생 야
구단 선수로 모국 방문경기에 참가했고, 귀국 후 황성YMCA 야구부에 입단해 선수
FIVB 초대 폴 리보 회장 / FIVB 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