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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배구 100년의 발자취_
여명
있는 부드러운 볼을 제작하는 데 성공, 이 문제를 해결했다. 그리고 한 진영에서 볼을
튀기다가 상대방 네트에 넘기는 회수도 제한했다.
그리스 아테네에서 제1회 올림픽대회가 열린 1896년, 모건은 스프링필드 YMCA 지
도자학교(현 스프링필드대학)에서 열린 전미(全美) YMCA 총회에 그가 고안한 볼게
임 민토네트(mintonette)의 내용을 보고하고 시범경기를 가졌다. 시범경기는 각각 5
인으로 구성된 두 팀이 대전했는데, A팀 주장은 크랑 홀리요크 시장(市長), B팀 주장
은 존 린치 소방서장이었다. 두 사람은 이 도시의 저명인사로 나이도 많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배구가 레크리에이션 스포츠로 고안된 단면을 보여준 셈이다.
스팔딩 회사가 개발해 시장에 보급한 볼은 원둘레 63~68cm, 무게 255~346g(현
재 공인된 볼은 원둘레 68±1cm, 무게 270±10g)이라고 한다.
경기 후 양 팀 인원수를 포함한 경기규칙 검토와 제정을 이듬해까지 파이젠
(George T Fisen) 박사가 작업하도록 정해졌으나 구체적 내용은 알려지고 있지 않다.
민토네트라는 명칭은 라켓이 없는 인도의 민톤 게임(minton game)과 유사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시범경기 후 토론회에서 할
스테드(Dr. Alfred T. Halsted) 교수는 민토네트를 발리볼(Volleyball)이라고 부르자
는 명칭 변경안을 제안해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볼이 지면에 닿기 전에 치거나 차
는 것을 발리(Volley)라고 하기 때문에 그렇게 제안된 것이다. 이 명칭은 한참 세월이
국제배구연맹(FIVB) 창립총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