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배구 100년
86
구, 농구, 아이스하키에 뒤떨어졌다. 이들 종목이 프로화되고 상업화하면서 스포츠에
소질 있는 우수한 인재들이 배구를 외면한 탓이다.
유럽의 6인제 배구가 아시아에 처음 등장한 것은 일본 도쿄에서 열린 1955년 제1회
아시아선수권대회와 1958년 제3회 아시안게임에서다. 9인제와 병행해서 6인제 경기
가 치러졌는데 6인제 선수권대회에는 참가국이 적어 더블라운드로 진행했다. 9인제
에서는 ①일본 4승 ②한국 2승2패 ③대만 4패, 6인제에서는 ①인도 2승 ②일본 2패
의 성적을 기록했다.
6인제의 유럽과 9인제인 극동의 배구경기 사정이 판이하게 갈린 것은 배구가 신생
스포츠로서 경기규칙이 확립되지 않은 채, YMCA와 선교사를 통해 세계 각 지역으로
따로따로 전파된 탓이라고 할 수 있다.
올림픽무대 등장과 전술의 발달
1947년 프랑스, 이탈리아와 체코, 루마니아 등 유럽 국가 14개국 대표가 파리에 모
여 국제배구연맹을 발족하고, 6인제 배구를 공식 경기로 결정했다. IOC는 1961년,
1962년 남녀 배구를 각각 올림픽 경기 종목으로 지정하고, 1964년 도쿄 올림픽대회
에 비로소 등장시켰다.
6인제 배구는 동유럽권에서 블로킹(blocking), 일본에서는 유도 낙법(落法)에서 힌
트를 얻은 롤링 리시브(Rolling receive) 등 수비 기술이 개발되는 한편 선수 장신화
에 따른 연타, 속공, 시차 공격, 그리고 스파이크 서브 등 공격 기술도 발전해 갔다.
국제배구연맹이 출범하고 세계선수권대회가 열리면서 배구는 경기 기술과 전술면에
서 급속한 발달을 거듭했다.
소련은 제1회(1949년)와 제2회(1952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패배가 전혀 없는 전승
(全勝)으로 연거푸 두 차례나 우승했다. 체코는 소련 전력에 대비한 새 전술을 개발했
다. 페인트를 곁들인 공격과 블로킹 아웃, 수비로 제3회 대회(1956년) 우승을 거두었
다. 소련의 힘, 체코의 기교 배구는 폴란드, 루마니아, 불가리아를 동반하면서 동유럽
강세시대를 열었다. 또 높이의 배구로 더욱 발전했다. 선수의 장신화를 통해 높은 토
스볼의점프(jump) 공격이위력을보였다. 일본의 ABC퀵공격도효과를나타냈다.
소련 여자는 1949년 유럽선수권부터 1960년 세계선수권대회까지 세계 정상을 독
주했다. 힘과 개인기를 바탕으로 한 공격 위주의 배구였다. 일본은 1972년 뮌헨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