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배구 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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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와 농구의 권위자이고 일본 YMCA 체육지도자로 극동 올림픽 위원을 겸하고 있는
미국인 브라운(F. H. Brown)을 서울에 초빙해 지도자 강습회를 열었다. 브라운은 도
쿄 간다(神田)의 중국인 YMCA를 초임지로 시작해 오사카, 고베 등 일본 관서(關西)
지방 YMCA의 체육 지도를 맡으면서 배구 보급에 힘쓴 인물이다.
일본 배구계는 그를 초창기의 공로자로 평가하고 있다. 1917년 국제경기대회 개최
경험이 전혀 없는 체육 지도자들을 설득해 필리핀, 중국, 일본 3개국의 제3회 극동선
수권대회(별칭 극동올림픽)를 일본에 유치하고 개최케 한 주역이다. 이때 배구가 정
식 경기 종목으로 채택되었다.
배구는 경기 보급면에서도 YMCA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당시 서양 선교사들
이 세운 기독교 계통 학교는 체육 교육을 중시하고 운동을 장려했다. 공립학교도 자
격증을 가진 체육교사를 많이 보유하게 되었다. 잇달아 열린 강습회는 침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배구계에 새로운 활력소가 되고 자극제가 되었다. 강습을 받은 사람은
중등학교 체육교사들이다. 이들이 학교에 돌아가 체육시간에 배구를 제대로 지도하
고 배구부 창설에 앞장섰다.
1926년 공립학교에 배구부가 생기기 시작했다. 남자는 경성사범, 용산중, 선린상
업, 제1고보, 제2고보, 여자는 제1고녀, 제2고녀, 경성고녀 등이다. 1930년에 들어서
는 인천, 평양, 원산, 부산, 마산 등 주요 도시의 공립학교와 서울의 숙명, 진명, 이
화, 동덕 등 사립학교로 확산되었다.
1925년 진명여고 운동장에서 배구를
배우는 학생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