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배구 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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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등학교에한정되었던배구도1937년보성전문학교(현고려대), 경성대본과와예과, 고
등상업, 고등공업(현서울대에편입),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로확장보급되고, 여자부에서
도경성사범연수여자에이어숙명여자전문,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에배구가보급되었다.
그러나 일본이 장개석 정권의 중국과의 중일전쟁(中日戰爭)을 미국과의 태평양 전
쟁으로 확전하면서 스포츠 세계는 위축되었다. 조선신궁경기대회는 1942년 일반 성
인층 경기를 폐지하고 규모를 축소해 중등학교 경기만 열렸고, 조선총독부가 직접 운
영하던 조선체육협회도 해산 운명을 맞아 사실상 막을 내렸다.
<전조선배구
·
농구선수권대회>
조선신문사는 첫 대회를 1925년 10월 4일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현 경기여고)
운동장에서 개최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열린 공식 배구경기대회로 알려지고
있다. 이때까지도 동아일보·조선일보사에서는 체육진흥을 위해 여러 종목의 경
기를 직접 주최하고 후원해 왔으나, 배구는 팀 수가 적어 대회 개최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이 대회는 일본인 학교팀 위주로 열려오다가 1930년 제6회 대회를 맞아 경기 장소
를 YMCA로 옮겨 개최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비로소 한국인 팀의 출전이 가능해
졌다. 한국인과 일본인 학생의 혼성팀인 선린상업이 제1고보를 3-1로 물리치고 우승
했다. 이 대회는 1935년 제11회 대회를 끝으로 없어졌지만 제6회부터 제11회 대회까
지 경성사범이 다섯 차례나 연거푸 우승했다. 그와 맞서 대적한 팀은 선린상업, 제1
고보, 용산중이었다.
<전조선여자올림픽대회>
조선신문사는 1923년 전조선여자올림픽대회를 창안했다. 경성사범학교 운동장에
서 열린 제1회, 제2회 대회는 체력에 무리가 덜한 육상경기 종목만 거행했다. 다음에
농구종목을 추가하고 1929년 제7회 대회 때 배구종목을 등장시켰다(경성운동장).
원산고녀가 3년 연속 우승을 안았다. 지방팀인 원산고녀는 이 대회 제7회, 제8회,
제9회(1929년~1931년)를 3연속 우승하는 외에 같은 시기 조선신궁종합경기대회 제
5회, 6회(1929년~1930년) 대회 우승도 휩쓸었다. 준우승도 세 번이나 하여 명실공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