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배구 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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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렸다. 이 경기를 심각하게 지켜보던 일본 임원들 역시 보기 드문 명승부였다
며 격려 인사를 잊지 않았다.
우리 남자팀은 이 기세를 몰아 나머지 팀들을 가볍게 따돌리고 6전 전승(세트득실
18-4)의 기록으로 우승, 도쿄 올림픽 출전자격을 획득했다.
한편해볼만하다고했던여자팀은전략이전에기본체력과정신력에서약세를드러내
북한과의마지만대결에서 3-0으로완패하고말았다. 북한팀은소련스타일그대로억
센체력을바탕으로빈틈없는수비와전형적인오픈공격으로경기초반부터우리여자팀
의기를꺾으며게임을주도했다. 결국남북이 1승1패로사이좋게도쿄올림픽출전권을
나누어가졌지만그과정은험난하기그지없었다.
여자팀, 북한 대신 올림픽 본선에
1963년세모뉴델리에서배구아시아지역예선이끝난뒤이듬해 8월도쿄올림픽본
선참가를위해북한선수단이도쿄에도착했다. 그러나국제육상경기연맹의북한육상
선수징계에항의한북한측이대회보이코트를선언하고돌아갔다. 여자배구참가팀이
줄어들자조직위원회측의요청으로북한대신우리여자팀이본선에참가하게되었다.
결과적으로최초의올림픽배구경기에한국남녀동반출전이이루어진것이다.
갑자기 올림픽에 나가게 된 여자팀은 유니폼을 급조해야 할 만큼 전혀 준비되지 않
은 상태에서 서둘러 참가하는 바람에 선수들 간 호흡은 물론 포메이션에 허점을 드러
내 처음부터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 없었다. 남자팀 역시 세계의 경기 수준조차 가늠
하지 못하는 상황이어서 그야말로 참가에 의의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 남자팀은
도쿄 올림픽 본선에서 9전 9패로 10위, 여자팀은 5전 5패로 6위, 각각 최하위에 머물
렀다.
뉴델리와 도쿄에서 실망스러운 전적을 남겼던 여자 대표팀은 4년 후 1968년 멕시
코 올림픽에서는 박무 코치의 지휘 아래 동유럽의 체코를 처음 3-1로 누르고 1승을
올렸다. 종합순위도 도쿄 올림픽 때보다 한 계단 올라선 5위를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