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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 병 해
여기 계신 분들은 모두 광복 후 선수생활을 거
쳐 지도자로 활약하며 후진 양성에 힘쓰신 것 외에도 협회 운영에 적극 참여하여 많
은 기여를 해주신 분들입니다. 훗날 올림픽과 같은 큰 무대에서 우리 배구가 큰 족적
을 남기게 되기 이전 뒤늦게 6인제 배구를 도입하던 과정에서 특히 노고가 많으셨을
줄 압니다. 특히 초창기 학원 배구가 막 빛을 보기 시작할 무렵 6·25전쟁이 터지면
서 선수, 또는 지도자로 겪었던 고초가 많았을 줄 압니다. 그 과정부터 먼저 설명해주
시지요.
임 형 빈
처음 한반도 안에서는 일본인 중심으로 시작된
배구가 광복과 함께 조선배구협회, 나중엔 대한배구협회의 이름으로 새 출발하게 되
었습니다. 들은 이야기로는 해방되던 해 11월 시즌을 종료하는 납회경기가 있었고 그
때 배구협회 발기에 뜻을 모아 창립 준비가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 만 용
제가 아는 바로는 8·15 광복 이후 오광섭, 안
종호, 김명수, 구연묵 선생 등이 모여서 8·15경축대회 개최와 함께 협회 창립을 준
비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분들 가운데 앞의 세 분은 경기중학 동문이지만 경복중
학 출신의 구연묵 선생과도 호흡이 잘 맞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누구보다 정열적이며
추진력이 뛰어났던 오광섭 선생이 실질적인 리더가 되어 경기, 경복 중심의 인맥을
잘 관리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준비위원회에서는 동덕여학교 조동식 교장선생
이 위원장, 오광섭 선생이 부위원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3월 창립총회에서 준비위원장이던 조동식 선생이 초대 회장으로 추대
되어 마침내 조선배구협회가 출범하게 되었습니다.
연 병 해
당시의 기록을 살펴보면 협회 창립 후 첫 대회
로 1946년 제1회 전국선수권대회를 열었는데 철도, 체신 등 달랑 세 팀만 참가해서
서울운동장 위편에 있는 제2운동장에서 경기를 가졌다고 합니다. 옥외코트인 데다
원로 특별좌담_
한국배구 100년의 회상과 조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