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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학교의 재정지원이 줄면서 학교 팀들이 하나둘씩 줄어들고 선수 자원도 모자
라엔트리미달로해체위기에몰리는상황을지켜보면안타까움을금할길없습니다.
*화호여중은 평남 용강 출신으로 세브란스의전을 졸업하고 교토제대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은 이영춘 씨가 정읍시 신
태인읍에 세운 학교. 화호 우승의 주역 이춘일은 1962년 자카르타, 1966년 방콕 아시안게임 등에 국가대표로 활약했다.
병원과 영아원, 중고등학교와 간호학교를 세우며 평생 농어촌 위생과 교육에 헌신한 이영춘 씨는 대한민국 문화훈장을
받았으며 타계 후에는 국민훈장 무궁화장이 추서되었다.
연 병 해
유붕수 선생은 광복 이후 경기, 경동, 보성 트
로이카시대의 스타플레이어로 기억에 남아 있는데 당시의 중학 배구 판도와 첫 해외
원정 때의 감회가 남달랐으리라 짐작됩니다.
유 붕 수
경기중학이 배구 명문이라는 건 세상이 다 아
는 사실인데 재미있는 건 경기가 경동에 잡히면 다음엔 보성이 경동을 잡는단 말이지
요. 물론 경기는 보성에 늘 강했고. 경복은 스타플레이어가 드물어서 오래가지 못했
어요. 경동의 주전멤버였던 나는 당시 주장 장경환과 콤비를 이루어 유감없이, 후회
없이 싸웠습니다. 당시 장경환은 백넘버로 0번을 달고 나와 화제가 되곤 했습니다.
사실 지금은 이 번호는 달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만.
해방 후 최초인 1954년 홍콩 원정은 그곳에서 사업을 하는 장동은 선배의 친구가 주
선해주었습니다. 원정 비용도 장동은 선배가 부담해 주었지요. 그때 처음으로 비행
기를 타 보았습니다. 전적은 3승4패를 기록했지만 홍콩 팀한테서 속공플레이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임 형 빈
우리 여자배구가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어
떻게 세계 상위권에 오를 수 있었는지, 여자팀들의 공적과 지도자들의 노력을 기억해
야 합니다. 1960년대 이후 올림픽에서의 꾸준한 상승 성과를 보더라도 우리 여자배
구의 잠재력은 무한하다고 생각합니다.
원로 특별좌담_
한국배구 100년의 회상과 조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