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배구100년 - page 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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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배구 100년의 발자취_
희망의 연대
단훈-
우리는 한국대표선수다. 긍지와 자부심과 책임감을 갖고
①우리의 영광을 위해
②배구의 중흥을 위해
③국가의 명예를 위해 나의 젊음을 모두 바치자.
우여곡절 끝에 여자대표팀은 10일 만에 훈련을 재개했다. 그러나 한 달간의 지도
예정으로 내한했던 다이마쓰는 13일 조기 출국하고 말았다. 여자대표팀은 곧 이어 벌
어진 멕시코 초청 경기서 고전 끝에 승리했다. 전지훈련을 겸한 일본 원정경기에서는
일본 대표팀에 2차전 한 세트를 15-0으로 빼앗기며 4연패당했다. 협회는 여자대표
팀 코칭스태프를 김한수, 이창호에서 박지국, 이문경으로, 남자대표팀 코칭스태프를
박지국, 이규소에서 박진관, 이규소로 바꾸었다. 여자대표팀 코칭스태프는 그해 12월
다시 최이식, 이문경으로 바뀌었다가 올림픽 본선을 앞두고 최이식, 전호관으로 또
한 번 바뀌었다.
대표팀 집단 이탈 당시 주장이었던 양진수는 그해 연말 인터뷰에서 “숙소 이탈은
부끄러운 일이었다. 모두가 반성해서 다시 뭉쳐 잘해보겠다고 다짐했는데 뜻대로 이
루어지지 않아 가슴 아팠다”고 말했다. 나라의 명예를 위해 개인의 희생을 당연시하
던 당시의 분위기를 짐작케 해준다. 그는 그해 6월 소속팀 동일방직이 해체되는 바람
에 태광산업으로 소속을 옮기고, 대표팀 집단 이탈 소동으로 결국 대표팀에서 물러나
는 곡절을 겪었다.
남자대표팀에 흐른 냉기류
- 수경사의 상비 2군 육성 계획
뮌헨 올림픽의 해를 맞기 한 달 전 남자대표팀 훈련에도 뜻하지 않은 비상이 걸렸
다. 육군보안사와 함께 군 배구의 양대 축을 이루던 수도경비사령부가 대표선수의 훈
련 소집에 응할 수 없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배구 경기에 특별한 관심을 보여 온 윤필용 사령관은 부대로 찾아온 협회 관계자들
에게 “북한과의 올림픽 예선 대결을 겨우 7개월 앞두고 대표팀을 편성하다니 너무나
무계획하다. 배구는 배구인만의 스포츠가 아니다” 라며 힐난했다. 윤 사령관은 “일조
일석에 큰 목표를 달성할 수는 없는 법이다. 수경사는 5년 이후를 대비해 신인 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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