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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덕성-숭의 여고 라이벌 경기
한국배구 100년의 발자취_
희망의 연대
1970년 초반 서울에서는 대신-인창, 덕성-
숭의의 4고교 정기전이 큰 관심을 모았다. 대
신, 덕성이 우세를 보이며 진행되던 대회는 숭
의여고 배구팀이 해체되면서 1973년부터는 중
앙여고가 참여해 대신과 중앙이 강세를 보이며
1980년까지이어졌다.
숭의는 조혜정, 유경화 등이 활약하던 1970
년 전국 규모대회를 휩쓸며 여고 최강으로 군
림했으나 아쉽게도 1972년 6월 학교 측이 여러
종목의 팀 육성이 어렵다는 이유로 해체하고
말았다. 4고교 정기전은 팀의 승패보다 학교
배구의 열기를 높이고 우수 선수들을 육성하는
터전이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1980년
대 우리 배구를 대표한 김호철, 문용관, 유중탁
(대신고), 장윤창(인창), 유정혜(덕성여고), 안
인자(중앙여고) 등 많은 우수선수들이 4고교에
서 배출되었다.
서울에서는 이들 4고교 외에 정강섭, 석경홍, 김화석의 남산공전, 이인선, 권영옥
의 풍문여고 등이 1970년대 초반 전국 무대 정상을 오르내렸다. 특히 풍문여고는 팀
재건 2년 만인 1971년 한 해에 종별선수권. 춘계연맹전, 대통령배, TBC배, 전국체전
등 5개, 이듬해 1972년에도 4개의 전국 규모대회를 석권하는 발군의 전력을 보였다.
서울 이외 지역에서도 숱한 명문고들이 1970년대 전국 정상을 다투며 많은 스타들
을 배출해냈다. 부산 남성여고는 김화복 김순득 등이 활약한 1973~1975년 사이 13개
전국대회를 제패했다.
신흥 광주여상은 1976~1977년 이태 동안 10개 전국대회를 휩쓸며 심순옥 김애희
양순덕 등 스타들을 키워냈다. 마산제일여고도 1970년대 후반 황경자 화경연 등의 활
약으로 6차례나 여고부 패권을 차지했다.
이 시기에 광주 조대여고의 백명선, 주미심, 춘천 유봉여고의 김미봉, 김길자, 한양
여고의 곽선옥 등 장차 국가대표의 큰 짐을 짊어질 동량들이 대거 배출되었다. 남고
부에서는 박기원, 강만수, 강두태 등 장신 거포들을 길러낸 부산 성지공고를 비롯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