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배구100년 - page 148

한국배구 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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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결승전 상대 일본에게는 3-0 완패를 당했다. 한국계 에이스 시라이의 강타와 마
에다, 마쓰다의 시간차 속공에 우리 팀은 대응할 만한 경기력을 보이지 못했다. 남은
경기는 동메달이 걸린 헝가리와의 3-4위전. 첫 세트를 15-12로 잃었다. 불안한 출발
이었다. 그러나 2세트부터 전열을 가다듬어 내리 세 세트를 빼앗았다. 3-1의 역전승
리, 올림픽 구기 출전 사상 처음 메달을 따내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이순복, 조혜
정, 유경화, 유정혜, 윤영내, 정순옥, 변경자 등 사력을 다해 코트에서 뛰었던 선수들
이 얼싸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고진감래, 마침내 긴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해방
감, 그리고 함께 이루어냈다는 감동이 맞잡은 손을 통해 전류처럼 흘렀다.
일본은 결승에서 다시 맞붙은 소련에 압도적인 우세를 보이며 3-0으로 완승, 금메
달을 목에 걸었다. 1964년 도쿄 올림픽 우승 이후 12년 만이었다. 일본에 두 번째 올
림픽 금메달을 안긴 주역은 거구에 강타와 눈부신 속공을 구사하는 시라이였다. 우리
체육계에선 ‘그때 저 아이만 잡아두었어도 금메달이 우리 것이 될 수도 있었는데…’하
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여고 2학년 때 이미 180cm의 장신 공격수로 자란 시라이는 한때 국내에 들어와 실
업팀 입단을 저울질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조건이 맞지 않아 일본으로 돌아간 후 구
라보(倉紡) 구라시키(倉敷) 팀 감독 시라이 세이치(白井省治)의 양녀가 되었으며 일화
2천만 엔을 받고 히다치(日立)에 입단, 일본 최고의 스타로 성장한 것이다.
우리 남자팀은 1라운드 A조에서 1974년 세계 챔피언 폴란드에 두 세트를 선취하
며 선전했으나 아쉽게도 3-2로 역전패했다. 쿠바, 체코에게도 져 5~8위리그로 밀려
나 종합 6위에 그쳤다. 폴란드는 준결승에서 일본을 3-1로 누르고 결승에서 소련을
3-2로 물리쳐 세계선수권대회에 이어 올림픽에서도 세계 정상을 지켜냈다.
1976 몬트리올 올림픽 3-4위전 승리
직후 얼싸안고 기쁨을 나누는 여자대
표 선수들
일본 여자대표팀에 올림픽 금메달을
안긴 한국계 에이스 시라이 다카코(白
井貴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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