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배구100년 - page 142

한국배구 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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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종목과 마찬가지로 배구에서는 일찍이 육해공군 3군의 각 부대가 저마다 재량
껏 운동부를 육성하고 있었다. 그러나 1970년대에 들어와서는 대부분의 군 팀들이 아
마추어 성격으로 남아 전국체전에나 출전하는 정도에 그쳤다.
1966년 4월에 창단된 육군방첩대(CIC)만은 1970년대에 들어서도 육군보안사라는
명칭으로 국가대표급 우수선수들이 운동으로 병역의무를 이행할 수 있는 유일한 통
로가 되었다. 보안사 배구팀은 김영대, 김길태 등이 활약하던 1960년대 말, 정동기
김충한 이용관 등이 활약하던 1970년대 초반 남자배구 정상에 군림했다.
1971년 4월배구에남다른관심을가졌던윤필용수도경비사령관이새로운군팀을창
단, 고교졸업신예장신선수들을모아미래의대표팀을육성한다는야심만만한계획을
세웠다. 그러나군과운동부의특성상기존보안사와의경쟁은불을보듯뻔한것이었다.
보안사와 수경사, 두 군 팀의 경기는 전쟁처럼 살벌했다. 두 팀 경기가 벌어지는 날엔
배구인들은물론관중들마저싸늘한분위기를느낄정도였다. 그뿐이아니었다. 두군팀
이경쟁하듯우수선수들을붙잡아가는통에일반실업팀들은팀구색을제대로갖추기도
어렵다는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군 복무 기간 우수선수들을 키워주기는커녕 성인
배구 자체를 위축시킨다는 불평을 사기에 이른 것이다. 수경사는 한때 협회의 국가대표
팀운영의무계획성을질타하며대표팀선수소집에도불응해소동이빚어지기도했다.
1973년 수경사와 경비사가 육군 단일팀으로 통합되면서 이러한 잡음은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되었다. 과열 경쟁으로 다소의 불편이 있었다 해도 군 팀의 존재는 국가대
표급 우수선수 육성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우리 남자배구의 경
기력 향상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는 데 이견이 없다.
체육관을 울리던 응원 함성
국내 모든 스포츠의 도입과 시작 배경이 그러하듯이 배구 역시 학교 운동부가 발전
의 기초가 되었다. 중고교 배구팀에서 성장한 남녀 유망 선수들이 실업팀으로 진출,
국내 배구 활동의 중심이 되었다. 또 그 가운데서 국가를 대표하는 스타들이 탄생했
다. 클럽 단위의 스포츠 팀 없이 주로 학교 운동부를 중심으로 근대적 스포츠 활동이
시작되고 전개되어 온 우리 스포츠의 특징이기도 하다.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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