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배구 100년
136
운 분위기에서 김한봉의 짓궂은 심리작전이 적지 않은 효과를 냈다고 이구동성으로
증언한다. “너희들 오늘 지면 아오지 탄광 간다며?”하고 상대의 감정을 자극했던 것
이다. 우리 대표팀은 첫 세트를 뺏고 둘째 세트를 내주며 혼전을 벌였으나 3, 4세트
서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경기를 풀어나가 3-1의 승리를 거두었다. 2승으로 뮌헨 본
선 티켓은 우리 손에 들어왔다.
그날의 패배로 이미 올림픽 본선 진출이 좌절된 북한은 자유중국과의 경기를 거부
하고 귀국해버렸다. 북한 대표선수들이 정말 아오지에 갔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우리
대표선수들은 그 후에도 여러 차례 국제대회에서 북한 대표팀 벤치에 앉은 당시의 북
한 선수들을 만났다고 말했다. 당시의 남북 대표선수들은 모두 양측의 베스트 멤버였
고 훗날 후배 양성의 중임을 맡게 되었던 것이다. 상디에 예선과 뮌헨 본선에서 고락
을 함께한 우리 선수들은 이를 계기로 ‘상디에클럽’이라는 친목 모임을 만들어 지금껏
우애를 이어가고 있다.
남북대결 패배의 쓰디쓴 보약
- 여자대표, 동메달 결정전서 완패
뮌헨 올림픽 A조에 편성된 우리 남자대표팀은 1970년 세계선수권대회 5위팀 폴란
드를 3-1로 격파했다. 그러나 소련, 체코, 불가리아에게는 역부족으로 패해 중위권
으로 밀렸다. 5~8위리그에서 루마니아에 3-0으로 지고, 브라질을 3-0으로 물리쳐
거둔 성적은 종합 7위, 이전보다는 향상된 전적이었다.
여자대표팀은 1라운드 A조에서 소련에 이어 2위로 4강에 올랐으나 준결승에서 일
본에 3-0으로 완패했다. 남은 경기는 북한과의 동메달 결정전. 우리 팀은 김영자, 이
순복, 조혜정, 이인숙, 유경화, 윤영내를 베스트로 기용, 최선을 다했으나 또 3-0으
로 완패했다. 그때까지도 우리 여자팀은 북한의 경기력을 뛰어넘지 못했던 것이다.
훗날 최이식 감독은 올림픽 직전 일본과 가진 연습경기에서 우리의 전력을 너무 많
이 노출해 패배를 자초했다며 크게 후회했다. 그는 “속공 등 세기에서 우리가 절대 우
위였는데 실전에서는 거꾸로 역습당했다. 일본 사서에 ‘바보 지휘관은 적보다 무섭다’
고 했는데…”라며 자탄했다. 그러나 뮌헨 올림픽에서 기록한 여자 4위, 남자 7위의
성적은 대망의 1970년대를 여는 서막일 뿐이었다.
뮌헨 올림픽 남자부 결승에서 일본은 동독을 3-0으로 제압하고 금메달을 처음 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