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배구100년 - page 128

한국배구 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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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만 용
한국 배구의 중간 정점(頂点)은 1976년 몬트리
올 올림픽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 과정에서 이낙선 회장의 공로가 가장 컸죠. 그
분을 중심으로 한 덩어리가 된 헌신과 열정이 최초의 동메달을 가능케 했습니다. 우
리 남자배구도 그 당시 6위의 성과를 올렸는데 게임내용이 모두 좋았습니다. 1964년
올림픽 첫 출전에서 전패를 당했던 때와는 다른 모습이었죠. 그 뒤로 여러 기업 총수
들이 배구협회를 이끌며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 지도부 혼란으로 좋은 결과를 이끌
어내지 못한 부분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 ?한국 배구 100년, 원로들은 한결같이 자신의 배구 인생이 행복했다고 말했다. 특히 낯선 타향에서 남모르는 고뇌와 시
련 속에서 배구 인생을 개척했을 김인수 원로의 감회는 유별했다.
김 인 수
“운이 좋았습니다. 올림픽에 배구가 처음 들어갔다
는건기대하지도못했던희소식이었지요. 여러분들의기대를받으며늦은나이에대표선수
가되었고. 33세면많이늦은편이지만삶의모든걸걸어보고싶었습니다. 34세때종합선수
권대회를마치고퇴역신고를하면서눈물이쏟아졌습니다. 아마도감사의눈물이었겠지요.”
박 승 수
우리 배구, 특히 여자배구의 세계 도전 역사는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우리나라 단체구기 사상 최초의 동메달(76년 몬트리올) 획득
이라는 점에서 보듯 역사도 짧고 경기인구도 적은 작은 나라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거
둔 뒤에는 선구자, 개척자들의 숨은 노고가 얼마나 큰지, 머리를 숙이게 됩니다.
세계 속의 뜨거운 경쟁을 이겨내야 하는 지금 우리 배구는 점점 더 어려운 위기상황
에 몰리고 있습니다. 리우 올림픽이 증명하는 것처럼 중남미 배구의 업그레이드, 그
리고 유럽의 파워 증강이 우리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희망은 있습니다. 자라
나는 세대들이 좀 더 정신적으로 기술적으로 무장한다면 오히려 더 큰 성과도 낼 수
있으리라 봅니다. 지난날의 경험이 말해주듯 우선 중국, 일본과의 파워 대결에서 밀
리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장시간 진지한 회고 좌담, 원로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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