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배구 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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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대형 대표팀을 만든다는 원대한 목표 아래 지금 선수들을 육성하고 있다. 그런데
협회의 무계획한 대표팀 소집으로 목표에 차질을 빚게 됐다”고 비판했다. 협회로서는
부끄러운 질책이었다.
협회는 수경사의 제안을 받아들여 남자대표팀을 상비군 1, 2군으로 재편성했다. 박
진관 이규소 코칭스태프의 1군은 1972년 새해 1월 3일부터 대한체육회 강화훈련에
참가했다. 구연묵(수경사) 손영완(충북시멘트) 코칭스태프의 2군은 1월 8일부터 수도
경비사령부 체육관에서 따로 훈련을 하기로 했다.
남북 경쟁에서 세계무대로
- 상디에 올림픽 예선
남자대표팀에게는 뮌헨 올림픽대회에 앞서 더 험난한 예선 관문이 기다리고 있었
다. 올림픽 한 달 전 프랑스의 상디에에서 아시아지역 예선대회를 치러야 했다. 출전
팀은 우리와 북한과 자유중국. 당시 공산권의 배구 열기에 힘입어 북한의 경기력은
3.
뮌헨 올림픽의
교훈
1971 남자상비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