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배구 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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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고, 인하부고, 옥천공고 등이 정상을 뺏고 빼앗기며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시련을 극복하고
협회의 다음 과제는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이낙선 회장 취임 후 수립한 장기계
획에 따르면 여자 은메달, 남자 4위가 목표였다. 그 바로 앞 단계인 1974년 세계선수
권대회에서 여자는 당초 목표대로 3위를 달성했다. 그러나 남자는 6위 목표에서 크게
미달되는 13위에 그쳤다. 협회는 올림픽 전 해인 1975년 12월 6일 장충체육관에서 남
녀 올스타전을 겸한 국가대표 선발전을 열어 올림픽 열기를 지피기 시작했다. 13일에
는 올스타전 결과를 참고해 남녀 올림픽대표팀을 구성, 발표했다.
바로 다음날 전혀 뜻밖의 소식이 날아왔다. 대한체육회가 몬트리올 출전 종목에서
남자배구를 제외했다는 것이었다. 올림픽의 해 1976년 신정 연휴가 끝나기 무섭게 더
욱 황당한 소식이 날아들었다. 올림픽 출전 여자대표팀 코치로 선정된 전호관 씨를
태광산업이 감독직에서 해고한다는 것이었다.
태광산업의 이임룡 회장은 전 감독이 대표팀 코치로 선임되자마자 이렇게 따졌다
고 한다. “태광산업을 그만두고 대표팀으로 갈래? 아니면, 대표팀을 그만두고 태광산
업에 남을래?” 전 감독은 “나로선 국가대표팀의 올림픽 성과가 더 중요하고 보람 있는
일이다. 직장 문제는 올림픽이 끝난 후 다시 생각해 보겠다.”고 답하고 태릉선수촌 입
촌에 앞서 태광산업에 사표를 던졌다. 아마도 우리 체육계에서 대표팀 지도를 맡아 실
직당한 최초의 케이스였을 것이다. 배구계에선 한동안 국가에 대한 봉사의 대가가 해
고라니 온당치 못한 처사라며 태광산업 이 회장에 대해 비난이 빗발쳤다. 더욱 우스꽝
스러운일은이임룡회장이 1971년부터실업배구연맹회장을맡고있었다는사실이다.
남자대표팀은 대한체육회의 올림픽 출전 배제 조치에도 불구하고 태릉선수촌에
서 자체 훈련을 시작했다. 1월 선수촌에 들어가면서 이규소 코치는 솔선해 단발했다.
“아직 출전권도 확보하지 못한 종목, 10위권을 보장할 수 없는 종목도 올림픽에 출전
시킨다면서…” 하는 무언의 항의가 내포되어 있었다. 남녀 배구는 1975년 멜버른에
서 열린 제1회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일본에 이어 나란히 2위를 차지, 몬트리올 올림
픽 본선 티켓을 확보한 상태였다.
8.
도전,
몬트리올
올림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