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배구 100년
138
본의 큰 벽에 3-2로 좌절, 3-4위전으로 밀렸으나 페루를 3-0으로 제압하고 세계 무
대에서 처음 3위의 성과를 올렸다. 1964년 도쿄 올림픽 6위, 1968년 멕시코 올림픽 5
위, 1972년 뮌헨 올림픽 4위에서 정상을 향해 또 한 걸음 전진한 것이다.
164cm, 58kg의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우리 팀 에이스 스파이커로 활약한 조혜정
은세계톱레벨의스타들을제치고대회최우수선수로뽑혀선수단에기쁨을더했다.
이 대회 결승에서도 소련은 일본에 3-0으로 완승, 세계 정상을 고수했다. 1962년
모스크바 세계선수권에서부터 1964년 도쿄 올림픽, 1967년 도쿄 세계선수권대회까
지 5년 동안 일본이 장악했던 여자배구 정상의 자리가 1968년 멕시코 올림픽에서부
터 소련으로 넘어가 1970년 불가리아 바르나 세계선수권대회, 1973년 우루과이 월드
컵까지 그 세력이 이어지고 있었다. 1960년 브라질 리우 세계선수권대회 이래 7차례
세계 대회 결승 대결에서 소련은 일본에 5승2패의 우세를 기록했다.
넘지 못하는 장벽, 일본
- 테헤란 아시안게임 은메달
1974년 9월 테헤란에서 열린 제7회 아시안게임에서 우리 남녀 대표팀은 모두 일본
의 장벽을 넘지 못해 은메달에 머물렀다. 이규소 김영대 코칭스태프가 이끈 남자팀
은 준결승에서 중공을 3-1로 물리쳤으나 결승에서 일본에 3-1로 졌다. 둘째 세트를
16-14로 잃고 셋째 세트를 15-10으로 따내는 등 세트마다 근접전을 벌인 것이 그나
마 위안이었다.
석태환 전호관 코칭스태프의 여자팀도 결승리그에서 중공을 3-0으로 가볍게 이겼
으나 일본에게는 첫 세트를 빼앗고도 세 세트를 맥없이 내어주고 말았다. 그러나 이
대회 1라운드 경기에서 우리 여자팀은 북한에 3-0으로 완승, 2년 전 뮌헨 올림픽 동
메달 결정전에서 당한 3-0 패배를 깨끗이 설욕했다.
세계선수권대회서도 3위 굳혀
이듬해 1974년 10월멕시코시티에서벌어진제8회세계선수권대회에서이규소, 김영대
코칭스태프의 남자팀은 13위를 기록했다. 1라운드에서 체코, 루마니아 등 동구 강호들에
게눌려중위그룹으로밀렸지만미국, 이탈리아, 중공등을젖히고중위권을지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