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배구100년 - page 140

한국배구 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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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하던 때 석유공사가 일격을 가했다. 1971년 4월 19일 제2회 대통령배 전국남녀대회
결승전이었다. 안경자 함옥숙 강미화 등의 분투로 석유공사가 국세청을 3-0으로 격
파했다는 소식은 당시 배구계에 상당한 화제가 되었다.
1973년 9월 실업2차연맹전에서는 국세청 팀을 그대로 넘겨받아 정상의 자리를 지
키던 대농이 뜻밖에 태광산업과 호남정유에 연거푸 패배하고 우승을 태광산업에게
빼앗겨 또 한 번 큰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주전 선수 일부가 부상으로 빠진 대농은 윤
영내 이인숙 길송애 이정자 등이 분전했으나 이순복 김영화 이영애 등이 활약한 태광
산업에 3-1로 고배를 들었다.
그러나 국세청은 1973년 대농으로, 1979년 다시 미도파로 간판을 바꿔 단 이후에도
최이식, 이창호 감독이 바통을 이어받아 국내 최강의 면모를 잃지 않았고 국가대표팀
의 주축이 되었다. 창단 첫해인 1968년부터 10년이 지날 때까지 종합선수권대회 우
승을 독차지했으며, 그밖에 대부분의 대회 타이틀을 거의 휩쓸다시피 했다.
남녀 실업팀 창단 러시
1969년 이낙선 회장이 취임하면서 협회는 본격적으로 국제무대의 경쟁에 대비한 준
비체제에 돌입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서 국가대표 상비군 운영은 물론 국내 배구
의 활성화가 급선무였다. 그러나 경제상황의 변화로 기존 실업팀들이 잇달아 해체되
었다. 새로운 팀 창단도 쉽지 않았다. 협회는 배구종목의 국제무대 상위 입상 가능성
과홍보효과를들어기업들에게배구팀을만들도록독려하고분위기를잡아나갔다.
1969년 9월 선경합섬이 제일은행 선수를 넘겨받아 창단되었으며, 1970년 9월에는
호남정유가 경성방직 팀을 인수해 창단식을 가졌다. 1971년 8월에는 태광산업이 동
일방직 여자팀을 인수해 창단했다. 그해 말 충북시멘트 남자팀이 해체되었으나 이듬
해 6월 충주비료로 부활했다. 이밖에도 도로공사가 1970년, 동양나이론, 대우실업,
전매청, 한일합섬이 1973년 연말께 잇달아 창단되어 국내 여자배구의 저변을 넓혔
다. 1975년 6월에는 체신부가 금성통신으로 인수되어 남자 성인배구를 주도하는 강
팀으로 거듭났다.
1970년대 내내 ‘타도 국세청(대농)!’을 외치는 나머지 실업팀들의 도전, 그리고 석유
6.
성인 배구
변화의
소용돌이로
1...,130,131,132,133,134,135,136,137,138,139 141,142,143,144,145,146,147,148,149,15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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