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배구 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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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거둔 여자 4
위, 남자 7위의 성적에 고무되어 대한배
구협회는 7년 후인 1980년을 세계 정상
도전의 해로 정했다. 세계 제패를 겨냥해
1974년 세계선수권대회 여자 3위, 남자 6
위, 1976년 올림픽 여자 은메달, 남자 4
위의 중간 목표를 세웠다.
목표와 방향 없이 배가 뜰 수는 없는 법이다. 미우니 고우니 해도 나라 한번 번듯이
세워보겠다던 그들의 목표 의식과 굳은 의지가 오늘날과 같은 나라 발전의 초석이 되
고 스포츠 융성의 바탕이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학교 체육의 중시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이 시대의 공적이었다. 고교 입시에서는 어
김없이 체력검사가 실시되었다. 입시 준비생들은 일반 학과와 다름없이 비중이 큰 체
력검사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스스로 체력을 단련해야 했다. 학교는 학교대로
저마다 전통을 이어온 스포츠종목 팀을 열심히 육성했다. 또 전교생을 동원, 응원에
참여케 해 애교심을 키우고 교우들 간의 우애를 다지게 했다. 이 시절엔 학교 대항전
이 벌어지는 체육관, 운동장마다 남녀 학생들의 우렁찬 응원 함성과 낭랑한 합창소리
가 울려 퍼졌다. 그렇게 해서 교정에서, 체육관과 운동장에서 젊은 기상이 뻗어 오르
고 푸른 꿈이 날개를 폈다. 아직도 궁핍하고 배고프고 고단하던 때였지만 그 시절의
주인공들에겐 잊히지 않는 낭만의 시대였다.
다이마쓰식 배구 수입
1972년 뮌헨 올림픽 출전을 앞두고 남녀 대표팀의 맹훈련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계속되었다. 한 해 전인 1971년 강화훈련 일수는 남자 141일, 여자 260일. 남자에 비
해 훈련의 집중도나 강도가 다소 낮은 점을 고려하더라도 당시 여자대표팀 훈련은 선
수들의 표현 그대로 살인적인 것이었다. 올림픽이 열리던 해 8월 직전까지도 남자는
155일, 여자는 178일 간 훈련장에서 볼을 때리고 받으며 쓰러졌다.
세계 정상권에 비하면 아직도 우리의 기술 수준이 크게 뒤떨어지던 시기. 그래서
2.
인고의 세월
1973년도 경기단체별 예산
순위 경기단체 예산규모
1
축구
247,000,000원
2
태권도
123,000,000원
3
야구
60,366,000원
4
배구
49,225,000원
5
농구
30,541,000원
6
탁구
30,107,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