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배구 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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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C는 처음 창설 때부터 대장 성격답게 참 요란했었지요. 김춘현, 유붕수 같은 이들
이 참여했느데 안종호 선배가 뛰는 남전에게도 연승을 거두며 몇 년간 대회를 휩쓸다
시피 했었지요.
최 이 식
나는 일본에 있을 때 수영, 기계체조를 배웠
었는데 한국에 와서 배구를 해보니 “맛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본책에서 본
건데 ‘벼룩 뛰기 훈련 200번’을 따라하느라 진땀 흘린 적도 있습니다. 벼룩이 점프할
때, 발까지 몸 안에 집어넣고 공기 저항 없는 가장 가벼운 자세로 뛰는 것처럼 배구경
기에서 점프할 때도 그런 자세를 배워야 한다는 이야기였지요.
학창 시절 부산에서 배구 연습을 하는데 모두가 가난하던 때여서 낡은 볼을 꿰매어
쓰곤 했습니다. 그런데 뜻한 대로 잘 되지 않아서 두 번 다시 배구는 하지 않는다
며 어떤 때는 볼을 칼로 찢기도 하고 어떤 때는 영도다리에 가서 바다로 뛰어들기
도 했었지요. 그래도 결국은 배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다시 복귀하곤 했습
니다.
박 승 수
가난한 시절 선배들이 고생하신 이야기를 들
을 때면 요즘 선수들은 너무 배가 부른 것 아닌가 생각하곤 합니다. 그만큼 세상이 바
뀌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우리 경제사정이 좋아져서 훈련환경도 개선된 결과겠지요.
우리가 학창시절 배구를 할 때만해도 배구볼이 많아야 한 팀에 두, 세 개뿐이었죠. 연
습 도중 선배가 스파이크를 날리면 볼 주우러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러다보
니 배구볼을 신주단지처럼 모시고, 볼을 외상값 대신으로 맡아주기도 했지요.
시골 자갈밭길을 지나며 돌 던지기 스냅 연습과 미루나무 잎 따기 점프 연습을 했던
기억도 잊히지 않습니다. 또 당시엔 언더패스를 손바닥으로만 하는 줄 알았는데 볼을
손바닥으로 받을 때나 스파이크할 때 배구 볼을 조여 맨 매듭이 피부에 닿아 얼마나
쓰리고 아프던지요. 훗날 서울의 대학에 진학해서야 비로소 언더패스를 두 팔로 받아
올리고 속공은 어떻게 하는 건지 배우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