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배구100년 - page 118

한국배구 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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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적이 좁아서 팀이 많을 때는 두 개 코트를 길이로 연결해 코트 밖으로 흐르는 볼을
줍느라 쫓아다니는 진풍경도 있었다고 합니다. 6·25전란으로 이전의 기록을 더 찾
아내지 못한 게 아쉽습니다.
김 만 용
당시 서울에는 경기, 경복, 경동, 서울, 보성,
용산, 휘문, 배재, 중앙, 선린상 등 팀이 10여개나 되었으니까 활기가 넘쳤습니다. 여
학교 팀도 많았지요. 진명, 중앙, 풍문이 앞서 나가니까 서울의 경우 동구, 성신, 정
신, 정화, 성정, 이화, 숙명, 덕성, 동덕 등이 도전장을 냈죠.
임 형 빈
지방에 있는 많은 여학교들도 배구부를 육성
했습니다. 축구, 야구, 농구보다 팀 숫자가 더 많았다고 합니다. 누구나 손쉽게 할 수
있는 운동이고 넓지 않은 공간에서 볼과 네트만 준비하면 플레이할 수 있었으니 보급
이 그만큼 쉬웠던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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