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배구100년 - page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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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인 수
“6.25사변당시중공군에밀려피난길에올라남
으로내려온것에서부터내배구인생은시작되었습니다. 평양에서는체신전문학교에다
니며 소련 군인들과 어울려 6인제배구를 처음 익혔습니다. 평양전화국에 취직할 때 기독
교신자라고했더니제외되더군요. 그래서피난을결심하고제주도에안착했습니다. 정전
후 육군 제1훈련소에 있을 때 군인배구대회가 대구에서 있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갔지요.
그덕분에 29사단을거쳐헌병사령부에스카우트되어배구선수로성장하게된겁니다.”
* ?대한배구협회는 창립 3년 후인 1959년 10월에야 국제배구연맹(FIVB)에 가입했다. 6인제 배구의 본격적인 시행이 시작
되게 된 것이다. 1964년 도쿄 올림픽에서 처음 채택된 배구경기 역시 6인제였다. 충분한 준비를 갖추지 못한 채 출전
한 우리 대표팀의 부진한 성적은 너무도 당연한 셈이다. 김인수 원로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한다.
“도쿄 올림픽에 나간 후 벌써 반세기가 지났습니다. 그땐 우리 선수들에게 6인제 배
구가 생소하기만 했었지요. 올림픽에 앞서 1963년 뉴델리 예선에 처음 대표팀 주장
이라는 중책을 짊어지고 참가하여 북한과의 역사적인 대결에서 승리한 감동을 지금
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정작 도쿄 본선에 나가서는 선수들 전체가 경험이 부족해 1
승도 올리지 못하고 전패를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때의 쓰라린 패배가 있었기에 한 걸음 한 걸음 전진하여 훗날 올림픽 3위, 세
계선수권 4강이라는 성취가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최근 리우 올림픽에서 우리
여자팀이 안타깝게 중도 탈락하긴 했지만 올림픽에 지금 단골처럼 출천하고 있다는 사
실, 더구나처음메달(몬트리올 3위)까지획득했다는사실이너무자랑스럽습니다.”
박 승 수
배구에서 우리와 일본은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관계에 있습니다. 한일 간의 승부에 국민들이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처음 일본으로부터
배운기술을획기적으로발전시켜온데다일본배구의영웅다이마쓰감독을초청하여
훈련함으로써 일본과의 격차를 좁힐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 분에게 감사를 드려야 할
것같습니다. 무엇보다볼을한번잡으면끈질기게몰아붙이는정신력을길러주었으며,
특히끈기의수비가최선의공격이될수도있다는사실을일깨워주지않았습니까.
원로 특별좌담_
한국배구 100년의 회상과 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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