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배구100년 - page 122

한국배구 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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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우쳐 준 분이 장경환 씨였습니다. 그는 동년배였지만 내가 존경하는 롤 모델이었습
니다.
유 붕 수
그 당시 장경환을 포함한 우리들은 정말 신나
게, 재미있게 배구를 했어요. 수업이 끝난 뒤 연습을 시작하는데 코치도 없었고 상급
생 선배가 지도하는데 포지션이 제 멋대로인 경우도 허다했죠.
또 시장을 뒤져 미군이 쓰던 스팔딩 볼을 구입해 쓸 때는 정말 신이 났습니다. 겉가죽
에 끈이 없는 미제 스팔딩 배구볼은 비싸기는 해도 오래 쓸 수 있는 장점이 있었으니
까요. 처음 9인제 시대에는 공격수는 공격만 하고 수비수는 수비에만 주력하는 역할
분담이 되어 있었는데 공격수를 위한 무릎 보호대를 구하기 어려웠습니다. 처음엔 축
구선수들이 쓰는 도너츠라는 보호대를 쓰기도 했지요.
박 승 수
지방에서 배구를 시작할 때는 어려움이 많았
습니다. 처음 제천에서 학교 다닐 때 배구부에 들어가려면 줄을 서야할 만큼 어려웠
고 가르치는 체육선생도 배구를 잘 모르는 분이라 고교 선배 김춘현 씨를 찾아가 개
인지도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고향 선배들의 도움으로 서울에 진출하고 여러 학
교 팀을 거쳐 실업 팀과 대표선수들을 지도하기에 이르렀으니 개천에서 용이 났다고
나 할까요, 아무튼 복이 넘쳤던 지도자 생활에 크게 만족하며 자랑스럽기만 합니다.
유 붕 수
지방 팀 이야기를 하니까 ‘맨발의 배구 팀’으
로 유명한 전북 화호(禾湖)여중 추억이 떠오릅니다. 학생 수도 몇 되지 않고 학교의
지원도 미약한 산골마을 화호여중은 체육교사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학교에서 합숙
하면서 훈련을 거듭하여 1961년 전국종별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드라마를 연출
했었지요. 특히 지방학교에서 지도자의 사명감이 어떤 결실을 내는지 교훈을 남겨
준, 아주 흐뭇한 이야기였습니다. 이들은 군산여상에 진학해서 또 한 번 ‘맨발 바람’
을 일으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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