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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만 용
여자배구의 속공은 일본이 먼저 개발한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앞서가서 만든 것도 아닙니다. 다이마쓰를 초청해서 훈련
받을 때, 그리고 일본 원정 기회에 보고 배운 것을 우리가 발전시켜 개발한 것이지요.
한 가지 덧붙일 말은 저변확대, 다시 말해서 보다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기회를 만든
다는 점에서 9인제의 뿌리를 살려가는 정책도 절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연 병 해
한국 배구 100주년을 맞으며 그동안 우리 배
구 발전에 큰 공을 세운 분들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임 형 빈
우리가 세계 흐름을 빨리 받아들여 6인제 주
류정책을 펴 나갔을 때 선도적으로 개척해나간 공로자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 중의
한 분이 선우양국 선생입니다. 당시 반대 여론도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6인제 전환은
당시 세계 흐름에 비추어 성공적인 선택이었습니다. 한편으로 한국 배구의 선진화에
가장 먼저 앞장서서 공헌한 첫 번째 개척자로 오광섭 선생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분
은 광복 후 배구협회를 만들 때부터 말없이 재정문제를 해결하는 용의주도한 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국제외교에서도 두드러진 공헌을 하셨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1959년 국제배구연맹 가입도 그분이 서둘러 성사시켰던 것입니다.
* ?김인수 원로는 동란 통에 남쪽으로 피란 오면서 그만큼 사회 적응이 늦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조용하고 원만한 성
품인 그는 어디서나 묵묵히 자신의 역할 이상을 해냈다. 그런 그에게 주변의 모든 배구인이 원군인 셈이었다. 그는 특
히 자신을 국가대표 주장으로 믿고 격려해준, 그리고 매사 처리에 적극적이고 능란했던 오광섭 선생을 잊지 못했다.
김 인 수
“사실 1963년 올림픽예선에 처음 나갈 때는 경험
도 부족한 상태에서 어떻게 주장임무를 수행할지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같은 동년배
의코치를도우면서단합의열쇠를찾았지요. 귀국비행기안에서그동안고생한일들이사
라지고기쁨이솟구쳤습니다. 당시선수단장이며훗날대한체육회전무이사를역임하신오
광섭회장의격려와희생적인노력, 그리고문제해결의지혜가특히기억에남습니다.”
원로 특별좌담_
한국배구 100년의 회상과 조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