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배구 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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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선 회장의 돌연한 퇴장
- 협회 혼란과 대표팀의 침체
1979년 4월 17일 이낙선 회장이 돌연 협회장 직에서 물러났다. “배구에 새 바람이
필요하다. 한 사람이 너무 오래 한 곳에 머물면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다”는 게 사퇴의
변이었다. 그러나 이 회장의 사퇴는 그 해 2월 박종규 대한체육회장의 취임과 무관하
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1969년 1월 이낙선 회장 취임 이후 비로소 협회는 세계 제패를 위한 장기계획을
세웠었다. 본격적으로 국제무대에 도전하기 시작, 여자대표팀의 올림픽 동메달,
남자대표팀의 세계선수권대회 4강과 아시안게임 우승, 여자청소년팀의 세계선수
권대회 우승이라는 큰 성과를 이루어냈다. 강직한 성품에 뛰어난 추진력을 갖춘
이 회장의 노력으로 국세청을 비롯해 선경합섬, 태광산업, 동양나이론, 한일합섬,
대우실업, 롯데, 금성 등의 실업배구팀이 창단되고, 배구 발전의 기틀을 다질 수
있었다.
그의 퇴임 후 박경원(1979~1980), 이상룡(1980), 조석래(1980~1983) 등 불과 4년
동안에 세 사람의 회장이 드나들었다. 협회도 자연 혼란에 빠져들었다. 1983년 김중
원 회장의 취임으로 비로소 배구계가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협회 운영의 혼란과 대표팀의 경기력은 불가분의 관계여서 그동안 각종 국제대회
에서 부진한 성적이 이어졌다. 국제무대에 피땀으로 쌓아올린 한국 배구의 명성도 빛
이 바랬다. 이 무렵 1970년대 영광의 주역들도 하나둘 코트를 떠나고 있었다.
1980년 제1회 아시아청소년선수권대
회에서 남녀 동반우승을 차지한 우리
청소년대표팀이 우승배를 자랑하고
있다.
12.
암운 드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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