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미국을 포함, 프랑스, 불가리아, 브라질, 폴란드 등 10개 나라가 참가했고 여자
부도 페루, 일본, 헝가리, 캐나다 등 5개 팀이 참가했다.
1985년 말 일본에서 열린 월드컵대회에서 남녀 모두 7위, 바닥권이었지만 목표 대
회가 아니었기 때문에 실망보다는 다음을 기약하는 담금질로 생각했다.
협회의 적극적인 지원에도 불구, 86 아시안게임의 결과(남자 은. 여자 동메달)는 기
대에 못 미쳤다. 금메달을 바라봤던 남자는 일본을 3-0으로 제압했지만 중공엔 맥
없이 무너졌다. 첫 세트를 15-10으로 따내고 둘째 세트를 10-15으로 내준 뒤엔 15-
1, 15-5로 허망하게 주저앉았다. 최소 은메달을 기대했던 여자도 일본과 중공에 각
3-0으로 참패, 3위에 그쳤다.
김중원 배구협회장은 1985년 15억 원을, 1986년엔 11억9천여만 원을 후원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는데 서울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은커녕, 참패를 거듭하자 “이제
그만두고 싶다”며 눈물을 흘렸다고 전해진다. 당시 체육계에선 회장의 열의를 경기인
들이 몰라주는 가장 좋은 단체의 예로 배구협회가 꼽히기도 했다.
1986년 아시아게임에서 금메달을 기대
했던 여자대표는 3위, 동메달에그쳤다.
한국배구 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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