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배구 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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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선경기에서는 곧잘 이기다가도 결정적인 경기에서 꼭 일본에 무너지고 마는 징크
스가 이때까지도 깨어지지 않고 있었다.
다행히 모스크바 올림픽을 보이코트한 데 대한 반발로 동구 공산권이 대거 불참하
면서 우리 남녀 대표팀에게 LA 올림픽 출전의 길이 열렸다. 소련을 비롯한 배구 강국
들의 불참으로 오히려 메달의 호기를 만난 셈이었다.
조배호 이인 코칭스태프가 이끄는 우리 남자팀은 대회 개막에 앞서 개최국 미국팀으
로부터 연습경기를 갖자는 제안을 받았다. 그러나 거절했다. 미국 정도는 안 중에 없었
다. 그보다는 일본, 중국, 그리고 나날이 전력이 강화되고 있는 남미 팀들이 우선 경계
대상이었다.
막상 뚜껑이 열린 대회 양상은 예상과 전혀 달랐다. 우리 팀은 브라질을 3-1
로 눌렀으나 뜻밖에 미국에게 3-0으로 완패했다. 브라질이 미국을 3-0으로 잡
아 세 팀이 똑같이 3승1패를 기록했지만 세트 득실에서 앞선 브라질(10-4), 미
국(9-3)이 4강에 오르고 우리 팀은 5~8위전으로 밀려났다. 미국은 준결승에서
캐나다를 3-0으로 누르고 결승에서 다시 만난 브라질을 3-0으로 꺾어 금메달
을 차지했다. 이 승리는 올림픽 2연속 우승 등 그 후 4년에 걸친 미국 남자배구
전성기의 서막이었다.
중위권으로 밀려난 우리 팀은 중공과 아르헨티나를 잇달아 3-1로 물리치고 5위를
차지했다. 미국과의 1차리그에서 어이 없이 3-0으로 패한 우리 선수들은 땅을 치며
한탄했다. 개막전 미국과의 연습경기
로 그들의 놀랍도록 향상된 전력을 미
리 알았던들 그렇게 허무한 영패는 당
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유일하게 당한
그 1패로 말미암아 메달을 딸 수 있었
던 절호의 기회를 허공으로 날리고 만
것이다.
이창호 김형실 코칭스태프가 이끄
는 여자대표팀의 행진도 순탄치 못했
다. 1차리그 A조에서 일본에게서 첫
세트를 빼앗았으나 내리 세 세트를
내주고 3-1로 졌다.
1984년 LA 올림픽에서 맞대결, 축하와
위로의 악수를 나눈 선후배 페루 박만
복 감독(왼쪽)과 한국 이창호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