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배구100년 - page 170

한국배구 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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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은 성인무대에 진출하여서도 국내 최고의 플레이어로 이름을 떨쳤다. 1992년 아시
아청소년선수권대회 우승 멤버인 김상우, 권순찬, 구준회, 이인구, 신정섭 등과 1994
년 아시아청소년선수권대회 우승 멤버인 이인구, 방신봉, 석진욱, 장병철, 최태웅도
1990년대 후반 국내 무대를 휩쓴 스타플레이어들이다. 이렇듯 청소년기에 괄목할 성
적을 내고 기대를 받았던 한국 남자배구가 이후 성인 국제무대에서는 도약하지 못한
아쉬움이 크다. ‘높이와 파워’라는 신체적인 열세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전략이 나
오지못한탓이었다.
<여자>
1987년 9월 제4회 서울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 2위(이창호 감독)
1989년 12월 제1회 브라질 세계유스선수권대회 4위(이성수 감독)
1991년 7월 제6회 체코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 5위(김형실 감독)
12월 제2회 포르투갈 세계유스선수권대회 우승(송세영 감독)
1993년 8월 제7회 브라질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 3위(송세영 감독)
8월 제3회 체코 세계유스선수권대회 3위(어윤홍 감독)
1995년 7월 제8회 태국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 7위(심재호 감독)
9월 제4회 프랑스 세계유스 선수권대회 5위(이성수 감독)
중국이 세계무대에 나온 이후, 1981년 월드컵대회 우승, 1982년 페루 세계선수권대
회에 이어 1986년 체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연속 우승을 차지하고 1993년 그랑프리
대회 준우승까지 세계 정상에서 독무대나 다름없이 활약을 펼치는 동안 한국은 일본
과 아시아에서 2. 3위를 다툴 수밖에 없었다. 세계 정상을 노리기에는 높이와 탄력,
파워에서 극복하기 힘든 조건 때문이었다.
1970년대 세계무대에서 3~4위를 다투던 한국 여자는 5~8위권으로 밀려나고 있었
다. 소련과 동구권이 우위를 보이던 여자배구의 판도는 쿠바, 브라질에 이어 한국의
박만복 감독이 지도하는 페루까지 가세하여 미국과 함께 중남미 배구라인을 형성하
게 되었고, 한국의 입지를 더욱 위협했다.
1974년부터 페루 대표팀을 맡아 중장기 발전계획을 세워온 박만복 감독은 1984년
LA 올림픽 B조 마지막날 한국을 3?2로 물리치고 준결승에 진출해 4위에 오르더니
4년 뒤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는 최강그룹으로 성장해 있었다. B조 1위로 준결승에
올라 4년 전 3~4위전에서 3-1 패배를 안겼던 일본을 3-2로 물리치고 결승까지 진
출했다.
소련에 안타까운 3-2 역전패를 당해 아쉬운 눈물을 쏟았지만 한국과 체격조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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