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배구100년 - page 179

179
한국배구 100년의 발자취_
희망의 불씨를 지키며
워졌다. 1999년 12월엔 대규모 공식 원정응원단 ‘스파이커스’(단장 김성훈)가 결성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아시아지역 예선전에 출전한 남자 대표
팀을 응원하기도 했다. 과거와는 완전히 역전된 상황이었다. 빅카드나 한양대, 성균
관대, 경기대 등 청소년 대표와 성인 대표들이 펼치는 실업 라이벌 경기에만 쏠림현
상이 심해, 때로 남자경기 다음에 벌어지는 여자 실업팀경기는 썰물처럼 관중이 빠져
나가 썰렁한 분위기 속에 치러지기도 했다.
명문에 도전하는 여고 신흥세력
1987년 여고 배구의 빅이벤트는 일신여상과 전주 근영여고의 대결이었다. 전년도
엔 전국체전 준우승이 가장 좋은 성적이었던 일신여상이 종별선수권대회, 춘계연맹
전, 대통령배고교대회 우승으로 3관왕에 올랐다.
그런데 3개 대회의 결승 상대가 공교롭게도 모두 근영여고였다. 일신여상은 전국
체전에선 송원여고에 밀려 2년 연속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최윤, 유미옥, 정유경의 활
약에 2년 만에 우승의 기쁨을 만끽했다. 훗날 한국 여자배구 최고 스파이커로 성장한
근영여고의 장윤희(170cm)에겐 한 해에 세 차례나 같은 팀에 패한, 잊기 힘든 한 해
였을 것이다. 이듬해 춘계연맹전 결승에서 근영여고는 이정선이 활약한 일신여상을
물리치고 우승했고 장윤희는 최우수선수로 뽑히며 설욕했다. 하지만 대통령배고교대
회 결승에선 다시 일신여상의 승리. 여고코트가 오랜만에 라이벌 대결로 뜨겁게 달아
올랐었다.
부산에서 열려온 협회장기 대회에서 1988년~1990년 3년 연속우승을 차지한 경남
여고는 지역팬들의 응원을 받으며 성장하더니, 박수정(177cm)의 기량이 급성장하면
서 1960~1970년대 배구 명가 부산의 자존심을 한껏 치켜세웠다. 춘계연맹전에서 서
울의 강호 일신여상을 꺾고 중앙무대 정상에 올랐다. 기세가 오른 경남은 장소연, 강
혜미 등 스타급 유망주들을 연이어 배출하며 1992년엔 춘계연맹전, 중앙배 대회, 대
통령배고교대회에 이어 전국체전까지 우승, 4관왕이 되면서 국내 대회 절반을 독식
했다. 경남여고는 1987년부터 1995년까지 매년 국내 대회에서 한 차례 이상 우승, 배
구 명문으로서의 전통을 지켰다.
제2회 세계유스여자선수권대회 우승의 주역들인 꿈나무 스타들이 활동한 1991년
국내 여고배구는 대표선수 성적표나 다름없었다. 매서운 속공플레이어 최광희가 활
1...,169,170,171,172,173,174,175,176,177,178 180,181,182,183,184,185,186,187,188,189,...612
Powered by Flipping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