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배구100년 - page 188

한국배구 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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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청에 나섰다. 슈퍼리그 대회 공식후원사인 현대건설까지 나서는 회유 끝에 12월 22
일 현대자동차는 2000슈퍼리그에 출전키로 하고 참가신청을 했다.
이에 앞서 배구협회 상임이사회는 연내 실시 예정인 남자 드래프트에 이미 대학을
졸업한 선수들은 참여시키지 않고 2000년 2월 대학 졸업예정 선수들만 참가케 하여
신청서를받음으로써 1999년 2월졸업선수들에게는지울수없는아픔을안겨주었다.
조용히 사라진 미도파
대농~미도파~대농~미도파로 이름을 바꾸며 한국 여자배구의 한 시대를 풍미했
던 미도파 여자배구단이 효성에 전격, 흡수통합된 것은 앞으로 일어날 배구계의 변화
조짐을 조용히 예고했다. 무적의 국세청 위용에 이어 184연승의 대기록을 세운 대농,
종별선수권대회에서 4연속 우승을 포함, 열 번이나 정상에 올랐으며 1984년 대통령
배 배구대회 원년 우승에 이어 1988년 두 번째 우승을 차지했고 쟁쟁한 국가대표선수
들을 배출해온 미도파배구단은 1993년 6월 4일, 조용히 막을 내렸다. 1973년 국세청
여자배구단을 인수, 대농으로 출범한 지 21년만이었다.
“서울 동북상권에 초대형 신규 백화점을 개점하는 등 종합유통산업에 매진하기 위
해 불가피하게 배구단을 해체, 효성 측에 넘기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효성의 미도파 구단 인수와 관련 금전적인 거래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창호
총감독은 물론 선수 14명과 당시 미도파가 스카우트를 추진했던 선수들 모두가 효성
유니폼을 입는다는 것이 발표 내용의 전부였다.
국내 최고 팀의 운명이 기업 내부의 구조조정에서 일순위로 와해될 수 있는, 풍전
등화나 다름없는 존재임을 읽을 수 있는 부분이었다.
제11회 대통령배 배구대회(1993. 12. 18 ~ 94. 3. 1) 2차대회 A조에서 효성을 3?0
으로 물리친 것이 미도파의 국내 참가 마지막 경기였다. 최이식 감독체제에 코치로
대농 창단에 합류했다가 1975년 10월 감독으로 승격한 이창호 총감독은, 1983년 9월
이사대우(당시 미도파)로 승진, 스포츠계 이사 1호를 기록했다.
이후 효성은 기존선수 18명 가운데 주순란, 성윤선 등 8명만 엄선하고 미도파 선수
들 가운데도 은퇴하거나 근무로 돌아선 선수들을 제외한 이지현, 장효실, 이혜정, 김
4.
외환위기가
몰고 온
배구계 한파
1...,178,179,180,181,182,183,184,185,186,187 189,190,191,192,193,194,195,196,197,198,...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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