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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배구 100년의 발자취_
희망의 불씨를 지키며
서진 등 7명을 받아들이는 흡수통합의 과정을 겪었다. 당초 근무를 지원, 효성에 입
단하지 않은 세터 김귀현은 호남정유가 데려갔다. 통합팀 효성은 그해 전국체전에 대
구 대표로 출전, 대전 담배인삼공사에 3?2 역전승을 거두고 준결승에 진출했으나 한
일합섬에 3-0 패, 결승 진출을 이루지 못했다.
한국 여자배구의 중흥기였던 1970년대를 풍미하며 한때 무적이다가 이후 현대와
여자배구의 쌍벽을 이루며 결승 맞상대로 1980년대를 호령했던 미도파는 그동안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대표선수들을 배출했다.
김영자, 조혜정, 유경화, 윤영내, 최숙, 길송애, 박인실, 임해숙, 김화복, 이운임,
유용순, 박미희, 곽선옥, 이명희, 정명은, 주선진, 박복례, 김정순 등이 대농 ~ 미도
파 시대를 주름잡았던 대표선수들이다.
고려증권 해체
IMF 구제금융 하의 혹독한 구조조정을 초래한 외환 사태로 국내 증시가 침체에 빠
지며 주식 평가손 등 막대한 손실을 입은 데다 어머어마한 규모의 부실채권 등으로
국내 약정고 랭킹 8위인 고려증권이 1997년 12월 5일 콜자금 3천7백억 원을 결제하
지 못해 최종 부도 처리됐다. 1963년 증권파동 이후 34년 만에 증권회사가 쓰러진 것
이다. 모기업 고려증권의 부도와 영업정지 여파는 곧바로 배구단으로 전해졌다. 이튿
날부터 팀 해체설이 공개적으로 나오기 시작하자 고려증권 배구단의 김광 단장은 9
일 배구협회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배구단을 해체하지 않고 다른 기업에 인수
팀 해체전 1998 슈퍼리그에 출전한 고
려증권 선수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