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배구100년 - page 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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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배구 100년의 발자취_
희망의 불씨를 지키며
성화재에 몰아준 격이 된 기존 팀들은 군입대 선수와 부상선수 등으로 전력이 급격히
떨어지자 대책마련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배구협회에서도 이상기류를 타고 있는 스
카우트 경쟁에 중재가 필요함을 인식, 대학연맹과 교섭에 나섰다. 걸림돌이 많았다.
자유스카우트로 선수육성지원금을 넉넉히 받던 대학팀의 불만에다 입단 졸업생 선수
인원 확대, 몸값 하락을 걱정하며 볼멘소리를 하는 학부형, 그리고 삼성화재를 참여
시키는 방법을 두고도 이해가 엇갈려 불협화음이 그치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배구협회는 드래프트 공탁금 마감을 12월 17일(1998년)로 정했다.
하지만 LG화재, 현대자동차써비스, 삼성화재, 대한항공 등 4개 구단 단장들은 “배구
협회가 정한 1순위 4억 원, 2순위 3억6천만 원, 3순위 3억1천만 원의 드래프트 지원
금(선수 계약금 포함)이 사회정서와 기업환경을 무시한 금액”이라며 드래프트 전면
거부를 공표했다. 18일 예정됐던 졸업을 앞둔 남자대학 4년생 18명을 대상으로 한 신
인선발 드래프트는 무산됐다.
99슈퍼리그에서는 실업팀에 신입 스타플레이어들이 없었다. 대신 대학팀엔 졸업을
앞둔 5년차 선수들이 뛰는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드래프트가 무산되자 그동안 자유경쟁 스카우트를 계속 주장했던 삼성화재는 재
빠르게 물밑작업을 벌여 대어들과 접촉, 배구협회에 유권해석을 물어 자유스카우트
가 가능한 것을 확인하고는 계약을 체결해 입단절자를 마무리했다. 한양대의 석진욱
(186cm) 최태웅(185cm), 성균관대의 장병철(194cm), 경희대의 명중재(206cm) 등 1
순위로 꼽히던 선수들을 1999년 4월 4일 배구협회에 신입선수로 등록했다.
이 때문에 드래프트 파동은 해를 넘기면서 새로운 국면으로 이어졌다. 현대자동차
(전 현대자동차써비스), LG화재, 대한항공 등 3개 구단은 “삼성의 스카우트를 인정할
수 없다”며 드래프트판으로 돌려보내라고 주장했고, 삼성 측에선 이미 입단계약을 맺
은 선수들을 내놓을 수는 없다고 버티면서 양측의 주장은 타협점을 찾지 못했다.
협회의 중재도 통하지 않았다. 3개 구단은 드래프트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삼성화재
와의 모든 경기를 거부하는 한편, 당해 연도 선수 선발을 포기, 10여명의 대졸 선수들
이 진로를 정하지 못한 채, 희생될 처지에 놓였다. 1999년엔 봄철실업연맹전이 열리
지 못했고 종별선수권대회를 겸한 실업배구대제전(10 .3 ~ 8. 서울)에도 3개 구단은
불참을 선언했다. 마침내 2000년 슈퍼리그를 앞두고 LG화재는 부상선수가 많아 출
전이 불가능하다고 했고 현대자동차는 ‘삼성 스카우트 무효화’를 주장하며 최종 마감
일까지 참가 신청을 하지 않았다. 배구협회장은 물론 대한체육회 김운용 회장도 협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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