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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배구 100년의 발자취_
희망의 불씨를 지키며
움하는 데에 3년여의 시간이 필요했다.
호남정유는 1999년 슈퍼리그까지 9연속 우승 대기록을 쌓으며 최강팀으로 군림했
다. 1993년 김철용 감독이 여자대표 감독으로 발탁되며 호남정유의 빠른 조직플레이
는 꽃을 피웠다. 이도희 세터와 함께 오랫동안 훈련해온 호남정유 중심의 여자대표
팀은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서 첫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남자배구가 1978년
뉴델리 아시안게임에서 우승한 것보다 16년이나 늦은 쾌거였다. 같은 달, 브라질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준준결승에서 중국을 3?1로 제압하며 4강에 진입, 1978
년 세계선수권대회(소련) 이후 16년 만에 최고의 성적을 거뒀다.
2000년 슈퍼리그에서 현대에 다시 왕좌를 내주기까지 9연속 우승의 위업을 달성한
LG정유(1997년 팀 이름 바꿈)의 위력은 은퇴와 복귀를 거듭한 세터 이도희(170cm),
왼쪽 공격의 장윤희(170cm), 센터 박수정, 홍지연의 콤비플레이가 중심축을 지키
고 있어서였다. 결혼 후에도 코트에 나선 장윤희는 공격선수로는 단신임에도 3연속
MVP 등 네 차례나 최우수 선수로 뽑혔다. 1970년대 몬트리올 올림픽 동메달 획득의
주역 조혜정과 비견되는 1990년대 최고의 스타였다.
LG정유(전 호남정유)는 1991년 3월 제8회 대통령배대회 준결승 이후 1995년 1월 슈
퍼리그 1차대회에서 4연패의 늪에 빠져 있던 선경인더스트리에 3-1로 패할 때까지 92
연승의 기록을 세운 ‘무적함대’였다. 젊은 패기에 정신력까지 가세, 전력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였다. 호남정유는 2000슈퍼리그 결승에서 1998년 해체된 SK케미칼과 한일
합섬의 대표선수들인 장소연(184cm), 강혜미(174cm), 구민정(182cm)을 드래프트한
뒤, 전력을 보강해 절치부심하며 정상 복귀를 노려온 현대에 무너지고 말았다. LG정
유로서는구단의스카우트열의가떨어져젊은피의수혈이절실했을무렵이었다.
오빠부대를 불러온 남자배구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실업배구의 꽃은 여자경기였다. 팀 수에서도 여자팀은
10개, 남자팀은 6개였다. 결승전도 여자실업경기가 우선순위에 올라있었다. TV중계
도 여자 실업경기가 먼저였다. 자연히 황금시간대에 여자경기가 배정되고 남자부 경
기는 첫 경기 배정이 많았다.
제1회 대통령배 배구대회(1984년)에서도 개막식에 이어 1, 2번 경기는 모두 여자부
경기였다. 남자부 경기는 둘째 날에나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