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배구100년 - page 168

한국배구 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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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배구의 전유물이나 다름없던 속공 플레이를 구사해 우리를 벼랑 끝으로 몰았던
경험이 있는 데도 불구하고, 그에 대비해 새로운 한국식 배구를 개발하지 못한 점도
있다. 1976년 이후 FIVB는 블로킹 이후 세 번의 히트를 허용 했다. 장신팀에 보다 유
리한 경기규칙이었다. 신장과 파워에서 뒤지는 한국으로서는 블로킹을 따돌릴 전략
이나 블로킹을 이용하는 공략법을 키웠어야 했다.
또 그동안 별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유럽 국가들마저 선수 육성에 관심을 갖고
세계 배구의 큰 줄기로 등장,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었다. 이에 비해 국내 선수들은 과
거와 달리 태극마크에 대한 자부심과, 패기, 의욕이 줄어 한국 배구의 위축과 심각성
을 더했다. 여기에 대표선발부터 잡음과 불협화음이 나와 한마음으로 준비하지 못했
다는 지적도 있었다.
잦은 감독 교체로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훈련하지 못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1985
년 이후 임태호(85 유니버시아드, 85 월드컵), 유석철(86 프레문디알, 86 아시안게
임), 양인택(87 FIVB서울국제대회), 이규소(88 서울올림픽) 등 남자대표는 4년 동
안 4명의 감독이 교체됐고, 여자대표도 송세영(85 월드컵), 전호관(86 세계선수권
대회, 86 아시안게임), 황승언(86 FIVB서울국제대회), 이임(87 아시아선수권, 87
유니버시아드), 황승언(88 서울 올림픽)으로 바뀌었다. 평균 1년 미만의 준비기간
으로 기대만큼의 좋은 결과를 얻기란 세계 랭킹 1~3위권 팀이라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FIVB서울국제배구대회는 높이와 파워
를 이기기 위한 한국형 배구에 대한 열
망을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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