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배구 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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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하는 한일여고가 3관왕을 차지했으며 정선혜, 주순란의 성암여상, 최은영, 이현주
의 경복여상, 장소연, 강혜미의 경남과 덕명여상이 우승을 나눠 가졌다.
여고배구의 경우 선수들이 성장기에 있기 때문에 고학년이 되어야 비로소 주전
멤버로 활동하게 되며, 곧바로 졸업이라는 종착역에 이르게 된다. 초고교급 스타
플레이어를 보유했더라도 선수 수급이 원활하지 못하다면 ‘반짝 명가’로 끝나기
십상이다.
1985년 최성자, 심원숙 등을 앞세워 2관왕에 오르며 경남지역 여고배구를 대표했
던 마산제일은 1996년 CBS배 대회에서 박혜숙, 김은진의 활약으로 우승, 11년 만에
국내 정상을 다시 밟았다. 그사이 1986년 창단한 진주의 선명여상이 종별선수권대회
에서 두 차례 우승과 전국체전, 협회장기 우승 등으로 경남 배구 신 명문으로 등장했
다. 1990년대 초반 명성을 떨쳤던 한일전산여고(옛 한일여고)도 1997년 다시 정상에
진입하며 3관왕이 되는 데에 6년이 걸렸다.
1980년대 여고배구 4강 구도를 그렸던 서울의 중앙여고도 1989년 종별선수권대회
우승 이후 한동안 침잠해 있다가 강혜연, 강연주 등을 배출하며 다시 활기를 띄었다.
1994년~1996년 다관왕에 오르더니 이은경, 오희승에 이어 장해진, 김사니로 이어지
는 스타 계보로 1998년 마침내 르메이에르기, CBS배, 전국체전 우승이라는 3관왕의
영광을 차지했다. 1995년에 이어 3년 만의 환호였다.
1997년 여고 배구계엔 깜짝 놀랄 신흥세력이 나타났다. 창단 3년째인 목포여
상이 봄철 연맹전에서 ‘전통의 강호’로 불리는 일신여상과 경남여고를 차례로 물
리치며 우승을 거머쥐었고 종별선수권대회에선 한일전산여고를 제치고 정상에
올랐다.
무등기대회에선 호남 배구의 간판 송원여상을 제치고 우승, 단번에 3관왕이 됐다.
대통령배 고교대회 준우승까지 추가, 여고 배구 판도에 새 그림을 그렸다. 1994년 창
단 이후 5번의 우승을 이끌어낸 주역, 이윤희(172cm)는 1997년 최고의 몸값(3억 원
대 이상)을 받고 LG정유와 계약했다.
세기 말 여고 배구엔 또 한 번의 소용돌이가 있었다. 유스대표 박선미와 최정화의
쌍포를 앞세운 강릉여고가 한걸음에 4관왕에 등극했다. 봄철 연맹전, 르메이에르기
대회, 대통령배고교대회, 전국체전에서 우승했다. 강릉여고가 1999년 상대한 결승
상대는 한일전산여고, 일신여상, 양백여상, 경남여고 등, 모두 여고 배구사에 한 획을
그었던 강호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