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배구100년 - page 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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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배구 100년의 발자취_
희망의 연대
현대 시대의 개막
- 미도파 독주에 제동
국내 실업무대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1980년대 들어서며 오랫동안 여자배구 정상
의 자리를 지키던 국세청, 대농의 후신 미도파가 현대의 거센 도전을 받아 흔들리기
시작했다. 1977년 1월 몬트리올 올림픽 동메달의 주역 전호관 감독을 불러들여 창단
한 현대는 이듬해 11월 미도파가 불참한 실업 3차연맹전 7개팀 리그에서 6전 전승으로
첫 우승을 기록했다. 이때부터 일기 시작한 현대 바람은 갈수록 거세어져 대회 때마다
우승을 놓고 미도파와 격전을 벌였다. 현대는 1981년 5월 종별선수권대회에서 미도파
를 3-0으로 격파하고 우승했으며, 1982년 1월 종합선수권대회와 2월 실업 1차연맹전
에서도 잇달아 미도파에 완승을 거두고 정상에 올랐다. 1984년 종합선수권대회가 대
통령배 슈퍼리그로 확대 개편되면서 첫 대회에서는 미도파가 우승했으나 이후 이은경
김정순김송은정금선등이활약한현대가 3년내리우승하며최강의자리에올랐다.
현대는 1980년대 들어서 줄곧 국내 정상을 놓고 미도파와 치열한 경쟁을 이어갔으
나 아쉽게도 이들 두 팀 선수들이 주축을 이룬 대표팀은 국제무대에서 기대만큼의 성
과를 내지 못했다.
1977년 전매청 팀을 넘겨받아 창단했던 롯데는 1981년 다시 한국후지필름으로, 석유
공사는 1982년 국제상사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1979년 12월 해를 넘기며 한때 실업 강
호로 기세를 떨치던 대우실업이 별안간 해체되는 불행이 닥치기도 했다. 대우 측은 새
로이창단한새한자동차축구팀지원을위해여자배구팀을해체한것으로알려졌다.
남자 실업배구에서는 1983년 1월 고려증권, 2월 현대자동차써비스가 잇달아 창단
되어 기존의 금성과 경쟁하며 활기를 띄었다. 그러나 세계 무대에서는 1970년대와 같
은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학원 배구의 위축
- 서울은 지고 지방은 뜨고
고교 배구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지방 고교팀 보호를 위해 중학 선수의 타 시
도 진학을 금지한 교육 당국의 조처가 진원이었다. 남다른 열의를 가지고 팀을 운영
하던 대도시의 많은 명문고들이 선수를 확보하지 못해 잇달아 팀을 해체하는 안타까
운 상황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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