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배구100년 - page 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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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까지 그의 지원에 나섰고 체육관을 찾곤 했다는 사실이다. 이 가운데 배구협회장
의 바통을 이어받은 기업 총수도 있었다.
평소 일본의 다이마쓰 지론에 심취해 있던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이 세상에 불가
능한 일은 없다”고 역설했다. 상공장관 재임 중 100억 달러 수출 목표를 달성한 것처
럼 그는 ‘세계 제패가 아니더라도 올림픽 메달은 딸 수 있다’는 굳은 신념을 보였다.
그는 해외원정에 나가는 선수단장이나 대표들에게 금일봉과 함께 편지를 써서 격
려하기로 유명했다. 1978년 10월 로마 세계남자선수권대회에서 4위의 전과를 올린
박진관 감독에게 준 격려 편지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이번 로마 세계선수권대회를 보고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우선 그동안 심혈을 경
주한 훈련과 투지, 작전 등이 주효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감독의 역할이 얼마
나 중요한지, 다음 여자선수권대회에서도 좋은 성과 있기를 바랍니다. 나도 최선을
다해 지원하겠습니다.”
이러한 다짐과 약속은 유감스럽게도 한국의 모스크바 올림픽 불참과 1979년 이낙
선 회장의 중도사퇴로 더 이상 현실로 이어지지 못했다. 퇴임 한 해 전 우리 남녀 대
표팀이 월드컵에서 부진, 메달권 밖으로 밀려나는 것을 보고 그는 이렇게 질타했다.
“지도자와 선수 사이에 신뢰가 무너진다면 어떻게 세계 정상을 바라볼 수 있겠는가.
지금은 배구인, 비배구인을 가릴 때가 아니다. 나는 그럼 배구인인가. 벽은 벽돌로만
쌓는 것이 아니다. 시멘트로 틈을 바르고 회를 칠한 후에야 벽은 완성되는 것이다.”
그의 직선적 성격과 돌진형 행정은 때로 논란을 빚기도 했다. 배구 중흥을 위해서
는 저변확대보다 우선 대표팀 전력강화를 통해 세계 정상에 하루 빨리 접근하는 수직
적 상승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는 한결같은 주장 때문이다. 실제로 올림픽 동메달
(여자)과 세계선수권 4강(남자)이라는 수치상의 성장이 한국 배구의 가치를 황금 종
목으로 올려놓았고, 결과로 평가하는 방식의 성공을 증명해준 셈이다.
그는 1969년 취임 초기 국내 배구 경기력 향상의 의욕에 불타 배구입문서 30만부
를 제작해 전국 학교와 업체, 그리고 군부대에까지 배포했었다.
일선 경기지도자의 한 사람인 최이식(崔利植) 감독이 저술한 ‘6인제 배구입문(入
門)’이라는 이 소책자는 배구의 기원에서부터 한국배구 역사, 6인제배구의 특성, 선수
들의 플레이 목표, 작전의 흥미, 연습법, 공격과 전술의 기본을 비롯하여 경기규칙 해
설까지 덧붙이고 있다. 세계화를 위한 강한 의지와 치밀한 전략을 읽을 수 있는 실천
프로젝트라고 할 만하다.
‘배구입문서.’ 이낙선 회장의 배구 보급
열의에 따라 최이식이 펴낸 배구 이론
서다.
배구 주요 활동_
개척시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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