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배구 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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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 여자배구 팀을 만들어 키우고 있던 그는 훗날 국회의장을 지낸 박준규 당시
배구협회장으로부터 특별한 청탁을 받았다. ‘이 사람이라면 믿을 만하다’는 확신에서
협회장 바통을 이낙선에게 넘겨주기로 한 것이다. 5·16 군사혁명 주체세력의 한 사
람으로 박정희 대통령의 신임을 받고 있던 그는 나중 상공장관, 건설장관의 요직을
거친 실력자다. 배구에 대한 열의도 대단해 틈틈이 체육관을 찾아 응원했고, 그 가운
데서 희망을 발견했다.
추진력만큼이나 성격도 급한 그는 대기업 회장들에게 배구팀을 만들어 키워달라고
호소하는 한편 올림픽 제패를 목표로 하는 발전계획을 밝히고 기금 조성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그는 “회장님들, 우리 배구 한번 키워봅시다. 나 좀 도와주십시오. 올림픽
메달 가능성이 있는 단체경기는 배구뿐입니다.” 하고 간청했다. 그와 특별한 친분이
있었던 SK 창업주 최종건 같은 이는 “이 장관이 하겠다면 안 되는 일이 있겠소? 나는
무조건 OK입니다.” 하며 흔쾌히 화답했다. 박용학 대농 회장, 이임룡 태광 회장 등이
뒤를 따랐다. 이렇게 해서 당초 목표했던 것보다 3배나 되는 3천만 원의 올림픽후원
기금이 모아졌다.
취임 초에는 기금조성 외에 전용체육관 건립을 추진하려 했으나 상공부가 확보해
놓은 부지를 매각하면서 3억여 원의 협회기금으로 자립기반을 확보하게 됨으로써 체
육관계획을 수정했다.
주목할 일은 대기업 총수들, 예컨대 대우의 김우중, 효성의 조석래, 한일의 김한수
이낙선 회장이 1977년 제1회 세계청소
년선수권대회를 제패한 여자팀을 영접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