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배구 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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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과는 견줄 수 없는 단체구기 교류의 새
로운양상이라는점에서주목할만하다.
1980년대에 접어들며 중동지역 건설에
한국 붐이 일어날 무렵 또 다른 바람이
일어났다. 그 시작이 ‘한국 배구 전도사’
라고 할 수 있는 젊은 코칭스태프들과 국
가대표를 지낸 스타플레이어들이다. 한
국인의 근면성과 성실성이 인정받은 것
은 물론 한국 배구의 우수성을 인정받은
것이다.
한국 열기가 뜨거웠던 1970년대 말에
서 10여 년 동안에는 한 해에 20여 명이
몰려 나갈 정도였다. 사우디로 진출한 김
진희의 경우에는 무려 14년 동안 중동 현
지 대표팀 또는 클럽 팀의 지휘봉을 잡을
만큼 절대적인 신임을 받았다. 대한배구
협회 회장을 지낸 박승수도 국내에서 중
고교와 실업 여러 팀을 지도하다가 바레
인으로 날아가 한동안 한국 배구의 기술
을 전수하는 데 힘썼다. 한명섭 전 호남
정유 감독을 비롯, 장종술, 임태호, 조배
호, 정동기, 민웅기, 표공일. 박윤권, 김
영대, 진준택, 김충한, 이종원, 이용관, 이춘표, 오한남, 이순식, 석경홍, 노정현 등이
줄을이어중동행에합류했다.
국가대표 최장신 선수로 활약하던 박기원은 1979년 이탈리아 클럽에서 현역 선수
로 뛰며 조혜정 등 여러 선수들의 이탈리아 진출을 돕기도 했다. 이란으로 건너가 대
표팀 지도를 맡은 그는 2002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이란에 은메달을 안기며 지도력을
인정받아 귀국 후에는 우리 남자대표팀 감독직을 수행했다.
1970년대 후반를 거쳐 1980년대 들어서면서부터는 국가대표 선수로 활동하던 수
많은 스타들이 유럽과 중동지역에 혹은 지도자로 혹은 현역선수로 진출, 우리 선수들
박기원
김호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