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배구100년 - page 442

한국배구 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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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이어 1971년 2월 대신고 연승 신화를 만들던 박대희(朴大熙)가 서독 국가대표팀
지도를 맡아 유럽으로 건너갔다. 서독 여자대표팀 의 내한 전지훈련 기간 잠시 지도
해 준 인연 덕분이었다. 박대희는 대표팀 지도에 이어 배구협회 강화위원장의 요직을
맡아 크게 활약했으며 많은 후배들에게 독일 진출의 기회를 열어 주었다.
1973년 9월 남녀 국가대표팀 지도 경력을 가진 박지국이 처음 남미로 진출했다. 멕
시코로 떠난 그는 바로 여자대표팀 코치를 맡으며 실력을 인정받아 ‘멕시코의 우상’이
되었다. 또 해외파 한국 코치들의 맏형으로서 긴밀한 유대감으로 결속을 다지며 국제
외교무대에서도 두드러진 활약을 보여주었다. 그 덕분에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
서는 해외파견 코치들이 하나로 뭉쳐 우리 여자대표팀의 메달 획득을 지원하는 큰 힘
이 되어 주었다. 20년 넘게 멕시코에 머물며 어진 성품과 뛰어난 지도 성과로 현지인
들의 칭송을 받던 그는 애석하게도 1991년 1월 부인과 함께 LA 인근 접경지역 여행
도중 호텔 방에서 불의의 사고로 운명했다.
수많은 해외 진출 지도자 가운데 가장 크게 이름을 떨친 성공 사례로 ‘페루 배구의
아버지’로 통하는 박만복(朴萬福) 감독을 들 수 있다. 1973년 우루과이에서 열린 여자
월드컵에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출전한 그는 우리 배구 사상 처음 세계 3위 입상이라
는 뛰어난 전과를 올렸다. 작은 체구를 가진 동양 선수들의 뛰어난 플레이에 매료된
페루 측이 이듬해 이낙선 회장에게 특별히 부탁해 그를 대표팀 감독으로 모셔갔다.
명예의 전당에 오른 박만복 감독이 페
루 배구인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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